아르헨티나의 유력 대선 후보인 하비에르 밀레이가 휴지 조각으로 전락하고 있는 자국 통화를 “미국 달러로 대체하겠다”는 공약을 내걸면서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달러라이제이션이란 자국 화폐를 버리고 미국 달러를 공식 화폐로 사용하거나 자국 화폐와 달러화를 공식 화폐로 함께 사용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기축통화인 달러를 채택함으로써 통화가치 하락과 환율 변동 위험을 제거하고 대외 신인도를 높여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달러를 공식 화폐로 인정하면 미국에 정치·경제적으로 예속돼 통화 주권 상실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달러라이제이션은 자국 화폐가치의 급속한 하락 등 극심한 경제 불안을 겪는 개발도상국이나 체제 전환국이 채택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달러를 자국 화폐로 사용하는 국가는 파나마·에콰도르·엘살바도르 등 10여 개국에 달한다. 소말리아·짐바브웨 등은 자국 화폐와 달러를 병용한다.
밀레이 후보의 달러라이제이션 공약이 주목받는 것은 달러화를 쓰는 다른 나라에 비해 영토가 넓고 인구도 많은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몰락과 연관돼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세계적인 농업 국가로 돈과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한때 세계 5대 부국으로 꼽히기도 했다.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유명 TV 시리즈에서 이탈리아의 한 소년이 돈을 벌기 위해 떠난 엄마를 찾아 먼 길을 나서는데, 그 목적지가 바로 아르헨티나였을 정도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1940년대 이후 몰락의 길을 걸었다. 포퓰리즘 정책과 정치 불안정이 반복되면서 수차례 금융 위기와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최근 물가 상승률이 100%를 넘어서자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133%까지 올렸지만 아르헨티나의 고질병이 단기간에 치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잘못된 정책이 세계적 부국을 빈국으로 전락시키고 통화 주권마저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은 더욱 더 조심해야 한다.
<김능현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