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원(애틀랜타 거주)
지난 10월 7일 새벽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서 1천여 명의 무고한 인명을 살해하고 2백 여명의 인질을 잡고 대치하면서 시작된 전쟁으로 양측에서 1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번 전쟁은 천부인권을 신성시하는 민주국가에서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극악한 범죄라는 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차제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왜 이처럼 철천지 원수지간이 되어서 끊이지 않고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지 균형잡힌 시각으로 근본적인 이유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서기 66년 유대인 열심당원들이 주동이 되어 제정 로마의 통치에 반발하는 유대인들의 봉기가 팔레스타인에서 불붙었다. 그 후 3년 만인 70년 로마의 명장 티투스의 군대에 의해서 예루살렘은 초토화되었고 유대인들은 세계 각처로 흩어지게 되어서 그 때 유대인들의 제1 차 디아스포라가 형성되었다.
가나안 땅은 원래 필리스틴인(지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던 땅이었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 역사적인 사실이 지금의 비극을 자초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 구약성경의 창세기 12장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너의 본토 친척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유대인들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가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다. 4천 년 전 고릿적 이야기이다.
현대로 접어들면서 1914년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협상국이었고 독일 오스트리아, 오스만 제국은 동맹국이었다. 중동 국가들 대부분은 팔레스타인을 포함해서 당시 막강한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하에 있었다. 1918년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함으로 해서 6백년간을 유지해 온 오스만 제국은 무너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후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장악했으며 그때부터 팔레스타인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은 야훼 하나님이 점지해주신 자기 조상들의 고향이었기에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며 또한 아랍인들에게도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하마드가 천사 가브리엘의 도움으로 승천해서 알라를 만난 다음 계시를 받고 지상의 통치를 위해서 다시 내려온 곳이기에 가장 신성한 땅으로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 다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설립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1914년에 시작되어서 1918년 종전이 되기까지 영국과 프랑스가 꿈꾼 동상이몽의 속내는 다음과 같았다. 영국은 어떻게 산유국들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회유할 수 있을까 하고 고심하던 중에 1915년 당시 영국의 외무장관 맥마흔 공작이 아랍 세계의 정신적 지주였던 샤리프 후세인에게 이스라엘 모르게 비밀리에 협상을 제의했다. 만일 너희들이 우리들의 편에서 협조하면 오스만의 지배하에 있던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모든 아랍국가들의 독립을 보장해준다는 벨프어(Balfour) 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같은 아랍연맹인 팔레스타인에게도 독립된 국가를 건립해 준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제였다.
자신들이 꾸민 각본이 잘 먹혀 들어가자 1916년 영국의 대표인 마그 사이크스와 프랑스의 대표인 프랑수아 피코가 은밀히 만나서 시리아와 쿠웨이트를 기준으로 북쪽은 프랑스가 가져가고 남쪽은 영국이 가져 간다는 이른바 전후 논공행상의 비밀조약인 사이크스- 피코 조약을 맺었다.
레반트 지역에서 오스만 제국에게 열세에 몰린 영국은 아랍인들 모르게 바닥이 난 전쟁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1917년 유럽 금융계의 대부격인 유대인 자본가 로스차일드 가문에게 다음과 같은 결정적인 제안을 하게 된다. 너희들이 영국을 도와준다면 그토록 꿈꾸던 유대인 향토국가를 팔레스타인에 건설해준다는 빅딜을 성공시킨 것이다. 영국은 이처럼 아랍대표와 이스라엘 그리고 팔레스타인 대표들에게 약속어음을 마구 남발했던 것이다.
영국이 이들에게 해 준 3중 비밀조약이 오늘날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은 연합국 승리로 끝나고 난 뒤 디아스포라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 중 68만 명 정도가 세계 도처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2차대전 후 팔레스타인들과 이스라엘의 건국 문제를 주 의제로 1947년 UN총회가 열렸다. 그 때 팔레스타인 지방을 유대인과 아랍인으로 나누자는 분할국가 설립안과 두 민족이 함께 연방을 만들자는 연방안 두개의 의견이 제시되었다. 투표 결과 이스라엘의 압력으로 미국이 주도한 분할안이 압도적으로 통과되었다. 당시 영국은 기권표를 던졌다.
전체 인구의 10% 밖에 안되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56%가 넘는 좋은 땅을 차지하게 되는 불합리한 조약이었기에 유대인들은 쌍수를 들어 모두 찬성했으나 아랍인들은 결사 반대하였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은 건국되었고 같은 해에 아랍국가들이 동맹을 해서 이스라엘의 국가건설에 반대하는 제 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고 56년에 2차 67년에 3차 전쟁이 터졌다. 그러나 4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아랍연맹이었지만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6백만의 이스라엘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3차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아예 서안 지구 및 가자지구를 병합 해버렸다.
그 후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와 차별로 70만 이상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인근의 요르단과 이라크 레바논 지역으로 쫓겨났다. 1993년 PLO의장인 야세르 아라파트가 독립을 위해 노력한 끝에 이스라엘과 합의 하에 UN의 옵서버 국가로 인정받아서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 지역에 유명무실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세웠다. 팔레스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감시하에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이젠 아예 4천 년 전부터 조상들이 살아온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마치 2천 년 전 방랑하던 유대인들의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 때 국권을 찬탈당했던 민족의 후예로서 왠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비애가 남다르게 우리들에게 공명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철학자 헤겔은 “인류가 역사로부터 배운 유일한 점은 역사로부터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라는 의미 심장한 말을 남겼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한 병사로서 나는 전쟁의 참상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과연 호모사피엔스의 미래는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