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살아 있는 선이란
밖에서 얻어들은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자신의 구체적인 체험을 통해
스스로 깨닫는 일이다.
객관적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느끼고
철저한 자기 응시를 통해
자기 안에 잠 들어 있는
무한한 창조력을 일깨우는 작업이다.
그래서 명상을 가르켜
지식이 아니라 체험이라고 한다.
이 무한한 명상이
사랑이라는 온도와 지혜라는 빛으로
타인을 향해 발휘 될때
명상은 일상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선방 안에서 하는 명상이라면
뒤주속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다.
인간의 거리로 뛰쳐 나와야만
창조적인 빛을 발할수 있다.
창백한 좌불은 많아도
살아 숨쉬는 활불이 아쉬운 오늘이다. (법정 스님, 선의 세계에서)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법정의 잠언집에 나온 글이다. 나이가 들수록 단순함을 잃고 속뜰이 복잡한지 모른다. 최근 '명상' 채널을 들으면서 '명상은 행복이다' 그 말이 참 좋았다. 불교 경전에서나 들을 수 있는 선, 명상은 우리 일상의 행복을 위한 '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그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왜 깨닫지 못하는가--
NOW '내 안의 인류로부터 자유'라는 '에크하르트 톨레'의 글에는 ' 지금 이 순간을 적이 아닌 친구로 만들라. '마음 속의 소음을 잊고 침묵 속에서 모든 존재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우주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 나 우주에 줄수있는 선물이라니… 나는 세상에 태어나 얼마나 많은 실패를 했고 좌절하고 허둥대며 살아왔는가…
'에크 하르트 톨레'는 우리 내면에는 우리가 깨닫지 못한 아름다운 내면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문이 닫혀 있으면 그 밝은 빛이 들어올 수 없다. 당신이 깨어 있을 때, 그때는 '지금 이 순간'이라 말한다. 우린 수많은 과거에 인질로 잡혀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잃고 살아간다.
나는 젊어서 부터 염세주의적인 기질을 타고 난 사람이다. 내 삶을 괴롭혀 온 수많은 삶의 욕망들을 벗어나 어떻게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것이 '명상의 시작'이다.
지금 이순간과 나와의 화해하는 일이다. 나의 명상 센터는 나의 정원이다. 아침에 일어나 어떤 꽃들이 피었고 나의 분신인 바윗틈에는 떨어진 솔씨가 100도 여름을 죽지 않고 자라고 있다. 그놈들에게 물도 주고 꽃들을 가꾸면서 내 속뜰에는 지금, 이순간 행복을 찾는다.
자연 속에는 두려움도 욕망도 없다. 나처럼 수많은 세상의 번뇌도 없다.그냥 존재하며 아침 햇살을 즐기며 이름모를 새들이 다녀간다. 나 홀로 세상 온 번뇌를 짊어지고 사는 바보인 것이다. 두발로 걷고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다는 그 축복을 인간은 잃고 살아온 것이다.
두 번째 나의 명상 센터는 물속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물에서 하는 에어로빅으로 나이들어 하는 좋은 전신운동 이다. 운동으로 찾아간 수영장에는 12시만 되면 나 혼자다. 청새알 같은 물 속에서 온 우주를 한바퀴 돌아 그 옛날 남태평양에 두고온 청새알 물빛을 그리워하며 야자수 그늘에 기타치던 반나의 원주민들을 그리워한다. 하늘 은하수 꽃길에는 간밤에 어떤 꽃이 피었는가… 어느 별에는 어떤 신비한 아름다움이 어린 왕자처럼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서 장미와 사슴, 어린 왕자의 우주의 얘기를 듣는다. '명상은 행복이다' 하루를 명상의 세계를 헤매며 삶이란 신비며 아름다움이라는 기적을 체험한다.
나이들어 가장 힘든 것은 우울증이다. 삶을 괴롭혀 온 수많은 불행들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우울증은 치매의 원인이며 몸에 모든 병의 근원이라 한다. 우린 이미 살아 보았지 않는가… 무얼 더 고민하고 애태울 일이 있는가… 지금, 나의 삶을 소개하는 것도 지금 이 순간과 화해하며 모든 인생에 괴로움을 청산하자는 의미이다.
고요한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 한 걸음만 더 온 우주의 사랑에 귀기울여 보자. 삶이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다. 부질없이 보내버린 삶을 더이상 낭비하지 말고 새롭게 거듭 태어나는 일이다. 삶을 마치 소유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그 소멸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삶은 지금이요, 순간 순간 있음이라, 법정스님은 명상록에서 말한다.
행복해 지려면 조촐한 삶과
드높은 영혼을 지닐수 있어야한다.
몸에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명품을 갖었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정신이 깨어 있느냐가 중요하다
깨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 몫의 삶을 제대로 살수있다 (법정 스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