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여름의 활기찬 생명력이 넘쳤던 시절은 사라져가며 어느덧 화려한 색채로 물들이는 가을을 맞고 있다. 가을이 짙어가는 풍요로움 속에서 사슴의 짝짓기가, 시작되었나보다.
맥 다니엘 팜 팍 전원을 산책하며 숲길이나 개울가에서는 사슴 여러 쌍을 쉽게 볼 수가 있다.
가까이 다가가 스마트 폰 카메라를 사슴에게 들이대면 경계의 눈빛으로 주춤하며 망설이다가 이내 숲속으로 달아난다.
도심지 숲에서 쉽게 사슴을 볼 수 있음은 숲의 생태계가 아주 양호하다는 증거이지 싶다.
숲 언저리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던 갈색 무늬의 토끼는 인기척을 느끼자 깡충깡충 뛰어가며 숲속으로 사라진다.
나무 위를 잽싸게 오르내리는 청솔모가 열매를 모으기 위해 더욱 분주한 때이다.
자연이 베풀어 주는 숲속의 생동감 있는 풍경에 환호한다.
오후에 자신의 그림자를 앞세우고 숲길을 걷는 모습이 왠지 왜소하게 느껴진다.
현실의 중압감에서 온 왜소함이 초라하게 나타나지 않았으면 한다.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건강한 자신의 정체성을 맑게 회복하고픈 열망에 휩싸인다.
이따금 숲속의 정적을 깨는 새들의 청아한 울음소리에 삶의 신선한 리듬이 살아나고 있다.
최근에 내내 걷지 않다가 숲을 찾아 걷고 있으나 그동안 다리의 힘이 풀려 내딛는 걸음이 느려졌고 보폭이 좁아졌다.
매일 걸으면서 다리의 단단한 근육질을 키워 빠른 걸음으로 걷는 건강 유지에 힘쓰고 있다.
심장이 힘차게 고동치는 순간 내면에 흐르는 가을 숲의 노래가 싱그러움을 뿜어내고 있다.
아름다운 계절에 언제나 숲의 노래는 영혼을 정화 시키며 마음을 풍요로움으로 가득 채운다.
가을 숲의 맑은 화음의 선율이 삶의 숨결 위에 수놓아지고 있는 희열의 순간을 오래 기억하게 되리라.
가을 숲을 스치는 바람과 나무 잎새의 살랑거리는 감미로운 이중주인 환희의 세계를 말이다.
자연의 음악에서 마음이 순화되고 영혼의 순수함을 지닐 수 있는 축복에 감사한다.
한 사람이 걸어온 음악적 삶에서 고양된 영혼과 순수한 내면의 숨결이 오롯이 피어나는 투명한 가을 숲의 주명곡(소나타) 이었으면 더없이 좋겠다.
“모차르트”는 <클라리넷 협주곡 K622>를 작곡할 때 다가오는 죽음을 예감한 듯 담담한 심경으로 표현한 이 곡은 고요하고 엄숙한 음색이 짙게 배어있다.
제2악장의 아름다운 선율에 흐르는 삶을 체관한 쓸쓸함과 영혼의 깊은 울림이 깃들어 있어 숙연하게 한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전편에 <클라리넷 협주곡>의 주제선율이 “케냐”의 넓은 초원에 흐르며 영화 분위기와 잘 어울려 한층 더 짙은 감동을 주었던 곡이다.
이 가을에 듣고 싶은 음악 중에 단연 첫 번째 곡으로 꼽게 되는 이유는 모차르트의 만가에서 들을 수 있는 삶의 아름다운 시가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바람 소리가 깊어졌다. 서늘해진 바람에 실린 가을빛 향기가 이미 짙게 묻어나고 있는 때이다. 이 가을에 건전한 의식의 명료성과 합리성을 갖추기 위해 진지한 성찰을 원한다.
성찰에 의한 영혼의 고결함과 마음의 순수를 회복하는 훈련이 사람다운 품격을 지니게 한다.
바람에 실린 나의 간절한 염원이 사유체계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건전한 의식의 흐름을 멈추게 하는 것은 위선과 편견, 고정관념이 아닐까.
어느 한 곳에 생각이 멈추어 화석처럼 굳어있는 상태에서 의식의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숲이 따뜻한 햇볕과 비바람을 맞으며 날마다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가듯이 사유체계의 유연성을 키우는 힘이 성숙 된 삶의 절정을 약속한다.
사람은 역경을 겪으면서 원대한 삶의 절정에 이른 기쁨을 우렁차게 노래할 수 있으리라.
환희의 물결을 따라가는 희망찬 삶의 찬가를 말이다.
고통의 세월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는 역설을 마음에 깊이 새긴다.
어느덧 가을이 깊어가는 숲의 풍경이 고운 빛깔로 물들이는 경이로움에 전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