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대법관은 신성함에 가까워야한다.(The Supreme Court Justices should be close to divine.) 모든 판사가 그러하다면 상책이지만 최소한 대법관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클래런스 토마스와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이 공화당에 거액의 지원금을 제공하는 재벌로부터 호화스러운 여행접대를 받은 사실이 공개되어 비난을 받고 있다.
대법관에게 뇌물성 휴가를 제공한 자가 소송에 연루돼 사건이 대법원에 상정됐을 때 접대 받은 대법관이 과연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느냐가 이슈다. 모든 공직자, 특히 판사 중에도 사법부의 최고 위치에 있는 대법관에게 기대되는 청렴은 완벽에 가까운 수준이다. 어렵지만 가능한 수준이다. 대법관 후보를 지명하는 대통령의 자질과 의지에 달렸다. 대법관으로 지명되는 후보는 대개 판사 경력이 풍부한 항소법원 출신 판사들이다. 이들은 판결문을 남기기 때문에 대통령이 이들의 성향을 사전에 알고 지명한다.
뿐만 아니라 로스쿨에서 우수한 학생은 2-3학년 때 로 리뷰(Law Review) 연구팀에 선발되어 당시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을 분석하는 수업을 했기 때문에 로스쿨 학생뿐 아니라 변호사도 판사도 읽는다. 로 리뷰에 발표된 이론을 변호사들이 소송 실전에서 사용하며 판사도 판결문에 인용하는 경우가 있다. 대법관 후보를 지명하는 대통령은 후보의 자질을 알고 지명한다는 말이다. 국민의 대부분은 모른다.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나타난다.
100명 상원의원 전원의 동의로 인준되는 경우도 있고 51대49 등 턱거리로 통과하는 대법관도 여러 명 경험했다. 상원 전원 일치로 청문회를 통과한 앤소니 케네디 대법관은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지명, 2018년 은퇴할 때까지 국민의 존경을 받은 대법관으로 기억된다.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RBG)는 최초의 유대계이며 샌드라 데이 오코너에 이어 두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빌 클린턴이 1993년에 지명, 96대3으로 청문회를 통과해 2020년 작고할 때까지 동등권 판례를 주도했다. 국회의사당에서 장례식을 거행하고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RBG는 사무실 책상에 신명기 16:20 명구(“Justice, justice, you shall pursue”)를 비치하고 정의 추구를 신명으로 봉직한 대법관으로 기억된다.
뇌물성 여행을 접대 받은 현직 대법관 클래런스 토마스는 1991년 조지 H W 부시가 지명, 52대48 턱거리로 상원 청문회를 통과했다. 토마스의 자질을 보고 지명한 것이 아니고 전임자인 서굿 마샬 대법관이 흑인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흑인을 후임으로 지명한 것이 오류의 발단이었다. 정치적 지위도 아니고 최고의 법관을 지명하는데 피부색깔로 자격을 분별하다니 상식에 맞지 않는 행보였다.
전임자 서굿 마샬은 법관 경력이 없는 변호사다. 1954년 흑백아동 분리 교육제도를 타파한 판례(Brown v. Board of Education, 347 US 483)를 주도한 대법관이다. 피부 색깔에 관계없이 최고 자질의 법관을 지명했어야 될 게 아닌가? 토마스는 처음부터 자격 미달이었다.
역시 뇌물성 휴가 지원을 받은 새뮤얼 알리토는 2006년 조지 W. 부시가 지명, 58대42 역시 턱거리로 상원 청문회를 통과했다. 힘겹게 통과하는 경우는 지명하는 대통령의 정당 소속 의원들 지지로 인준되는 정치적 행위의 결과다. 국민적 지지가 결여된 절차임을 지적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수준만큼 발전한다는 원리에 귀착된다. 대통령을 뽑는 것도, 상원의원을 선출하는 것도 국민 손에 달렸으니 누굴 원망하겠는가? 국민이 깨어야한다. <이인탁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