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십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 내니 한칸은 청풍에 한칸은 명월에게
청산은 둘릴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조선 문인 송순의 시)
가을이 되면 돌산에 핀 ‘옐로 데이지’ 꽃잔치를 찾는다. 돌산을 노랗게 물들인 꽃들을 보면 일상을 뛰어 넘는 강한 정신의 힘 하늘이 키우셨구나… 100도가 넘는 펄펄 끓는 돌 덩어리에 어떻게 연약한 꽃들이 저토록 장엄한 꽃잔치로 산을 덮고 곱게 필 수 있을까… 아마 돌산은 꽃들을 피우기 위해 몰래 물을 품어 꽃씨를 키우고 있었나보다. 돌산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풍류가 흐르고 인간이 쓰고 간 삶의 무늬를 쓰고 있다. 돌 하나에 아마 지구 별에 가장 아픈 역사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북 전쟁의 역사 돌에 새겨져 있고, 흑과 백의 아픔이 쓰여진 돌이 지구 별에 또 있을 까… 왜 인간은 자연을 그대로 두지 못하고 전쟁의 아픔까지 돌에 새겨야하는지 모른다. 돌산에 핀 옐로 데이지 꽃 잔치에는 하늘이 키운 아름다운 혼이 깃들어 있다. 돌산에 새겨진 미남북 전쟁의 역사, 그 아픔이 새겨져 있다.
사람은 전쟁을 하기 위해 태어났고, 꽃들은 우주에 뿌리내린 아름다운 영적 감정이 충만히 깃들어 있다. 자연과 교감하면서 살았던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과로해서 기운이 달리면 숲속으로 들어가 두 팔을 펴고 소나무에 등을 기대고 그 나무의 기운을 받아들였다. 바위틈에 몸을 기대고 자란 푸른 솔에게 안부를 전하고 내 속뜰을 털어놓고 나면 마음이 투명해지고 기운이 솟는다. 솔은 선비의 나무라 영이 그마음에 깃들어 있어 산 자와 죽은자의 영을 알아차린다. 바위틈에 청정한 솔들이 뿌리에 물을 품어다가 옐로 데이지 꽃들을키운지도 모른다. ‘식물도 생각한다’에서 ‘우주와 교신하는 초감각적 지각의 식물’이 최근 연구로 소개되고 있다. 꽃들은 인간보다 훨씬 우아한 방법으로 서로를 확인하고 사랑한다. “꽃들에게 말을 건넬 때는 무릎을 꿇고 말을 건넙니다” 식물학자는 말한다. 돌산아래 740개의 종탑 옆에는 파도에 휩쓸려 거의 쓰러져간 소나무를 단풍 나무가 그 뿌리를 감고 살려낸 나무가 지금도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어떻게 식물이 죽어가는 소나무를 알고 강한 뿌리로 몸뚱아리를 껴안고 살려냈는지… 지구촌에는 전쟁을 일삼고 사람 목숨을 무수히 죽이는 살상 무기로 삼고 있는 인간인 우리는 얼마나 부끄러운 동물인가.
작은 돌산 하나에 한쪽에는 전쟁의 아픔의 역사가 새겨져 있고 한쪽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노오란 손수건 노오란 데이지 꽃들이 만발하다. 꽃들 마음에는 아름다운 사랑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지구 별 인간은 전쟁을 만들고 자연속 꽃들은 인류에게 평화와 사랑, 기쁨 나누고 싶어한다. 아름다운 엘로 데이지 꽃잔치에 나홀로 팔배개하고 누워 사람인 것이 부끄러울 때가 많다. 돌산지기로 산 지가 40년이 넘었다. 내 인생에 길이 보이지 않던 날엔 돌산을 찾는다. 살아 숨쉬는 듯한 돌산에 내 이민자 삶의 고뇌를 털어놓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돌산에는 하늘의 영묘한 기가 숨어 있어 상처받은 내 영혼을 흔들어 깨웠다. 돌산에는 일상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정신 세계로 나아가는 어떤 힘을 지니고 있다. 그 현묘한 우주적 세계를 넘나드는 옛선비의 혼에 취한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인생사 지나고보면 모든 순간이 꽃이었는데
그때 그사람이 멋과 풍류를 아는 멋진 사람이었는데
더 열심히 사랑하지 못한것을 후회한다
내 자녀들에게 더 많이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것을 후회한다.
더 많이 그들의 말을 들어 줄것을 --
나는 후회한다, 들꽃을 돈보다 더 사랑하지 못한것을 --
더 많이 게으르고 , 팔베개하고 들꽃들과 열심히 대화 할것을 --
내 자녀에게 돈만드는 사람보다 행복 만드는
사람을 가르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내 생의 모든 순간들이 다 꽃봉오리인 것을 몰랐다
내 젊음을 더 자유로운 정신으로 살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 시, 박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