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처음 이 땅을 밟았을 땐 365일 24시간을 쪼개서 쓰듯 시간 보정에 알뜰 했었다. 공휴일마저도 외면하기 일쑤였는데 정작 현지인들은 한 주에 40시간이라는 근무일 준수와 어김없이 휴가를 즐기는 시간 집행 근거를 늦게야 깨달았다. 느림이 경쟁력이라는 말에 새삼 수긍이 간다. 느림의 미학은 천천히 간다거나 느리다는 이유로 경쟁에서 밀리는 것을 의미 하지 않기 때문이다. 느림의 미학을 거부하거나 일축하지 않으며 느림을 수용하는데 근거를 두고 ‘느림의 심미학’에 접근해보려 한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있다. 한국에서 방문 오신 분들과의 격세지감 폭이 갈수록 멀어져 감을 느끼게 된다. 성공을 향한 집념이 집요하다. 앞서야 한다는 서두름 양상이 두드러져 보일 뿐 아니라 초조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이민자들도 바쁘긴 마찬가지다. 타민족 보다는 확실히 서두름과 바쁜 모양새가 두드러지게 살아간다. 타민족들 걸음에서는 느긋하고 여유로움이 엿보이는데 어찌 이리도 한국인들은 유독 바쁘게 살아갈까. 한민족이 지닌 바쁨 유전자에 충실하기 위해 덩달아 종종거림으로 가늠하려는 것일까. 게으름과 상충되는 느림의 아름다움을 살펴 찾는 안목을 기르며 느림의 심미학을 진지하게 바라볼 여유와 느림의 가치에 사려 깊은 숙고가 있어져야 할 것이다.
현대는 속도감과 효율성을 덕목으로 삼으며 하루하루 쫓기듯 살아가고 있다. 삶의 본질을 떠나 주변을 돌아보거나 현재의 삶을 살필 여유 조차 없이 속도감에 떠밀리며 하루들을 떠밀어 보내고 있다. 이러한 삶의 흐름을 수용하기에는 이미 지친 현대인들 사이에 느림의 삶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이미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우리네 한인 이민자의 삶을 돌아보면 토끼와 거북이 경주에서 느림의 미학이 미쳐 피부에 와 닿지도 않았는데 급변하는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 발맞추느라 여전히 빨리 빨리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급하면 돌아가라는 옛말이 무색해질 수 밖에. 유해한 환경이 삶의 터전을 범하게 되자 공해를 멀리하고 자연과 조화된 삶의 시도를 위해 도시를 벗어나는 삶을 택하려는 사람들이 뜻을 모으고 잃어버린 일상 회복을 위해 삶의 느림 표를 구현해내려는 의지가 실천되고 있는지도 오래다.
여유로운 삶을 몸소 찾아나선 무리들이 느림의 보람과 값어치를 추구하는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쉽사리 멈추어 지지않는 일상 속도감을 우회하며 속도를 안정적으로 줄여가며 천천히 서두르는 삶을 지향하려는 프로젝트를 담대히 삶 속에 개입해가자는 것이다. 자연을 가까이 하자는 의도가 일찍이 현대인의 허세로 보인 적이 있었던 적도 있다. 마라톤에 비유되는 인생길에서 삶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찾아 나서며 최선의 방안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는 단연코 자연 곁으로 다가 가고자 하는 인간미의 향기 이리라. 자연을 가까이에서 호흡하고자 하는 자연 본연의 아름다움을 선호하려는 덕목이 아닐까. 자연을 지켜내며 사랑하며 애호하려는 공동체 의식 발로의 기인으로 여겨진다. 자연에서 얻어지는 여유로움으로 느긋함과 한가로움을 공유하며 살아가려는 삶의 구상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느림의 보람을 추적해가며 궁극적 목표로 삼으려는 삶의 근거에 접근해 가려는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시간의 귀퉁이 부분에서부터 느림을 받아들이고 느림의 삶에 적응해가야 할 것이다.
느림의 심미학을 추구하려는 마음들을 서로 어루만져 주자. 그러노라면 인간 내면에서 퇴색되어 버리지도, 침식되어 버리지도 않아서 진실된 마음들이 서로 나눌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시대적 흐름에 실려 달리느라 왜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파악할 짬도 없이 스스로를 지켜낼 울타리조차 없는 시대의 흐름에 몸을 던지는 무모한 삶들을 더는 이어가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천천히 부대끼지 않으며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이며 가야할 방향은 어디인지 삶의 향방을 다시금 음미해 보자. 서두름이 남기고 간 여분의 오솔길을 거닐며 듣고 사유하며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에 권태로움을 실어 보내자.
발걸음 닿는 대로 풍경이 손짓하는 대로 발길을 옮겨보자.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도 손동작 하나에도 감사와 사랑의 시선으로 주시해보자.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할 것이라며 묵혀 두었던 일들을 조금씩 꺼내보자. 삶의 보폭을 Andante에서 Largo Adagio로 느림의 삶을 마음껏 향유하며 느림의 가치와 긍지를 누려야 할 것이다. 지금이, 생의 소중한 부분을 지나고 있는 건 아닌지. 무슨 계절이 머물고 있는지 돌아보기도 하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르는 시간 마련을 해보자는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제 속도를 유지하며 변함없이 흘러 가고있다. 각박한 세상이지만 느림의 삶이 일상에 끼치는 기쁨이나 보람의 관점에서 그 값어치가 어떠한지. 인식의 미학적, 감각적, 개념적 경험을 해보자는 것이다. 무의식이 내재된 자아의 정서까지도 포함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