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하버드 대학 경영대학원의 저명한 교수가 ‘행동과학’ 연구에서 데이터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조사를 받고 있다. 문제의 교수는 프란체스카 지노로, 언론에도 자주 등장한 꽤나 명성이 높은 학자이다.
문제가 된 지노 교수의 연구는 부정(cheating), 거짓말(lying) 그리고 부정직(dishonesty)에 관한 것으로 그녀는 이 연구를 10여 년 전부터 진행해왔다. 그녀의 대표적 연구 가운데 하나는 세금이나 보험 정보 같은 것을 작성하기 전에 ‘정직 서약’(honesty pledge)을 먼저 하도록 하면 작성 후 서약을 하는 경우보다 더 큰 정직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지노 교수 연구는 데이터가 거짓일 뿐 아니라 그녀는 이 사실을 알고도 논문 출판을 멈추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실제로 데이터를 왜곡해 편집한 정황이 엑셀 스프레드시트를 통해 드러나면서 지노 교수는 ‘공무 휴직’ 상태로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오랫동안 ‘정직’에 관한 연구를 해왔던 저명 학자가 그동안 아주 ‘부정직한’ 방식으로 연구 결과를 조작하고 왜곡해 왔다는 사실에 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지노 교수 경우는 도덕과 윤리에 관한 언급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손쉽게 빠지는 함정을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인간이 ‘도덕적 자족감’을 맛보고 여기에 빠지게 되면 정말 도덕적인 존재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비도덕적 행위를 아무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일단의 사람들을 3개의 그룹으로 나눠 첫 그룹에는 ‘공정한’ ‘관대한’ ‘친절한’이라는 단어를 꼭 집어넣어 자신을 묘사하도록 하고, 두 번째 그룹에는 ‘신의 없는’ ‘탐욕스러운’ ‘못된’ 같은 단어를, 그리고 세 번째는 ‘책’과 ‘열쇠’ 같은 중립적 단어들을 넣어 글을 쓰도록 한 실험이 실시된 적이 있다. 그러고 나서 자선단체 기부를 요청한 결과 가장 적게 낸 그룹은 ‘공정하고 관대한’ 사람들이었으며 가장 많은 돈을 낸 것은 자신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던 그룹이었다. 그 차이는 무려 다섯 배에 달했다.
자신은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될 만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일수록 모범과는 거리가 먼 행위들을 아주 손쉽게 한다. 가톨릭 신자들을 상대로 적선을 요청했더니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올 때보다 고해성사를 하러 갈 때 훨씬 더 많은 적선을 했다.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며 가는 고해성사 길에서는 40%가 적선을 한 반면, 죄를 씻어 깨끗해졌다고 여기는 고해성사 후에는 겨우 17%만이 지갑을 열었다.
도덕과 윤리, 그리고 종교적인 사랑을 입에 달고 살면서 이를 널리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깨끗하고 고결하다는 실증적 증거는 별로 없다. 현실 세계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 넘쳐 난다.
평생을 도덕 연구에 바쳐온 독일의 철학자들을 대상으로 다른 분야 학자들과 얼마나 다르게 살고 있는지를 조사해 봤더니 나은 점이 단 하나도 없었다. 모친에게 안부 전화하기에서부터 헌혈과 장기기증, 그리고 학생들의 이메일에 얼마나 성실히 응답하는 지 등 모든 면에서 그랬다. 심지어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분실되고 반납되지 않는 책들은 윤리관련 서적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고귀한 가르침을 설파하며 세속적 존경과 인기를 누리던 많은 유명 성직자들이 일탈과 탐욕의 돌부리에 자주 걸려 넘어지는 것은 자신은 충분히 도덕적이라는 자족감과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는 종종 도덕성을 자산으로 커리어를 일궈온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인지적 함정이 되곤 한다. 다른 이들에게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요구하거나 들이밀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아주 관대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것이 바로 ‘위선’이다. 인간은 누구나 조금씩은 위선적인 면모를 갖고 있지만 이것이 더 두드러지거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권력자들의 위선이다. 일단의 네덜란드 학자들은 권력이 커질수록 위선도 늘어난다는 것을 밝혀냈다. ‘종교권력’이 그렇고 ‘정치권력’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지금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윤석열 정부는 ‘공정과 상식의 아이콘’임을 자처하며 권력을 잡았지만 지난 16개월 동안 대통령은 이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 왔다. 공정의 잣대가 그의 가족과 측근들 앞에서는 무기력하게 휘어졌으며 매사 ‘남 탓’만 하며 철 지난 ‘이념전쟁’에 매몰되는 등 대통령으로서 상식적이지 않은 태도를 지속해왔다.
‘공정’같은 가치를 브랜드로 내세워 밤낮없이 입에 올리다보면 마치 자신이 ‘공정의 화신’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쉽다. ‘정의사회 구현’을 내세웠지만 가장 정의롭지 못했던 전두환 정권이 그랬듯 말이다. 치열한 자기성찰이 뒤따르지 않는 도덕적 자족감은 위선과 추락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LA미주본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