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이규 레스토랑

[전문가 에세이] 세월 가면 저절로 잊어질까?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9-07 11:32:05

전문가 에세이, 김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기억’ 연구의 선구자 제임스 맥고 박사는 어느 날 AJ 라는 젊은 여성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선생님, 모든 게 너무 자세히 기억나서 미칠 것 같아요. 10년 전, 20년 전, 어느 날짜라도 제게 물어보세요. 뭐든 다 기억할 수 있어요.” 그녀는 실제로 그날그날 일어난 세세한 지역 뉴스부터 날씨, 어느 극장에서 어떤 영화가 몇 시에 상영되었으며 주인공은 무슨 색의 옷을 입었는지 일일이 기억했다. 처음엔 장난 정도로 여겼던 맥고 박사는 AJ를 만나 사실을 확인하자 곧바로 정신과의사, 뇌과학자와 더불어 연구팀을 구성한다. 이것이 ‘과잉기억증후군’ 탐색의 시작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더 잘 기억하고 싶어 하는 줄 알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9.11과 같이 트라우마로 남을 재난, 첫사랑 연인이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던 그날의 쓰린 기억, 끔찍한 자동차 사고현장, 사랑하던 가족이 세상 떠나던 날의 마지막 힘겨운 호흡, 회사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던 기억….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 그 자리에 다시 돌아간 것 같은 괴로움이나 공포를 잊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고통스런 기억들이 세월 가면 잊어진다는 망각 이론에 의지해왔다. 마치 오래 전에 찍은 사진이 세월 따라 빛이 절로 바래듯. 

최근 인지심리학자들은 망각이란 저절로 일어나는 수동적 현상이 아니라 뇌의 능동적 활동의 결과라는 새로운 이론에 집중한다. 뇌의 망각 기능을 활성화하면 PTSD, 불안, 알츠하이머 등에 더 나은 치료법이 될 것이라는 희망도 있다. 존 뮤어 트레일을 걷던 하이커들이 갑자기 나타난 곰의 모습을 AJ처럼 낱낱이 기억한다면 어떻게 될까? 곤두선 털과, 발톱의 구부러진 각도, 곰 그림자를 더 크게 만든 저물녘 태양의 각도 등을 죄다 기억한다면? 그 다음엔 곰으로부터 공격당하지 않을 어떤 레슨을 찾기가 오히려 힘들 것이다. 불필요한 세부 기억보다는 핵심만 기억해야 미래 새로운 상황에서 응용이 가능하다. ‘기억’만큼 ‘망각’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망각이 없으면 기억도 없다. 하버드 연구팀도 초파리, 생쥐 등을 이용한 기억실험에서 알츠하이머란 기억 작용 고장이 아니라 망각 작용의 고장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2013). 망각의 지나친 활성화가 치매증상을 부추긴다는 것. 위에서 어떤 물건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그것을 잡으려고 한다. 그런데 그 물건이 가시 돋친 선인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면? 당연히 뻗었던 손을 다시 들여올 것이다. 가시에 찔리면 아프다는 기억 때문에 사람이 원치 않는 경험 앞에서 손 뻗는 행동을 멈추듯, 원치 않는 기억이 떠오르면 자발적으로 기억 인출을 억압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즉, ‘기억하기’ 대신 ‘망각하기’를 활성화하면 머릿속에서 나쁜 기억만 골라서 지우는 일이 가능해진다. 우울한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슬픈 기억을 계속 떠올리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되풀이 반복하는 것도 통제가 가능하다. 의학, 심리학, 뇌과학은 이렇게 PTSD 환자들의 고통스런 기억만 선택적으로 지우는 기술을 집중 연구 중이다. 세뇌로 악용될 윤리적 위험을 걱정하는 일부 시각에도 불구하고 망각 연구는 최근 심리학계의 핫한 주제이다. 세계적 재난 급의 기억뿐만이 아니다. 엑스(Ex)를 잊지 못해 잠 못 이루는 밤,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 지우듯 원치 않는 기억만 ‘클릭 클릭-->완전 삭제’로 갈 수 있다면 짧은 인생길, 아픈 세월도 후울쩍 단축되리라.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애틀랜타 칼럼] 자기 만족에 가치를

이용희 목사 찰스 스웹의 주물 공장은 언제나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 공장 시설도 뛰어났고 유능한 공장장을 채용했지만, 이상하게 생산 실적 자체가 극히 저조했습니다. 그는 공장장을

[전문가 칼럼] 노년층이 반드시 알아야 할 메디케어 사기: 일상 속 실제 경고 신호

전국 아시아 태평양 노인센터 (National Asia Pacific Center on Aging, NAPCA) 메디케어 사기는 명세서에 찍힌 낯선 금액, 한 통의 전화, 혹은 주

[법률칼럼] 9월 이민법 대전환, 낡은 서류 한 장과 성급한 출국이 운명을 가른다

케빈 김 법무사 미국 이민 행정이 9월 중순을 기점으로 빠르게 바뀐다. 이번 변화는 단순히 신청서의 날짜를 바꾸는 수준이 아니다. 취업허가와 체류신분 신청 양식이 동시에 교체되고,

[행복한 아침] 게으름 변명

김 정자(시인 수필가)   나이든 어르신들 모임에 곱게 차려 입은 할머니 한 분이 합류를 하게 되었다. 여든도 한참 접어든 연세 신데 완벽에 가까운 메이커 업에 화사한 옷에 귀걸이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신실한 삶의 모습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신실한 삶의 모습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삶의 매 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이 듦의 현실에서 냉철한 사고의 체계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균형을 지녀야 하리라.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3)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3)

18세 자녀의 쇼셜시큐리티 혜택 연장과 학생 재학 보고(SSA-1372-BK) 가이드18세 도달 시 연금 중단 방지법, 풀타임 고등학생 자격 유지 및 학교 인증 절차 총정리 천경태

[신앙칼럼] 카르페 디엠의 피상성 (Superficiality of Carpe Diem, 로마서Romans 8:20)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윤동주는 그의 시 〈소낙비〉에서 '카르페 디엠의 피상성(Superficiality of Carpe Diem)'에 관한 시대정신을 단 몇

[시와 수필] 숙명여대 조지아 동문회

박경자 (전 숙명여대 미주총회장) 50년 전 꽃 같던 우리가 어느덧 80대 할머니가 되었다. 숙명여대 동문회를 돌아보며 그간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다 혼자 울음을 터뜨렸다.

[삶과 생각] 九 死 一 生 (구사 일생)
[삶과 생각] 九 死 一 生 (구사 일생)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어떤 사람은 한평생을 비교적 편히 살다 가는 행운이 있고 어떤 사람은 파란만장하고 험한 가시밭길을 헤쳐가며 살다 가는 불행이 있다. 인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차고문을 들이받았다면 자동차보험일까, 주택보험일까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차고문을 들이받았다면 자동차보험일까, 주택보험일까

집에서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 가운데 의외로 자주 발생하는 것이 있다. 바로 차고(Garage)에서 일어나는 사고이다. 후진하다가 차고문을 들이받거나, 기어를 잘못 넣어 집 벽을 들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