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자연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게 합니다.
안톤 슈낙의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초가을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게 한 것에서 <자연과 은총>을 동시에 생각하게 합니다. <자연과 은총>은 한 공간 안에서 함께 숨을 쉬고 살아가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 <자연>은 편견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고, <은총>은 우주의 눈으로 세상과 자연을 보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감옥 안에 있으면서 감옥 밖의 사람들에게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어서 세상과 자연을 보게 하였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8). 안톤 슈낙의 고뇌는 단순히 센티멘탈리즘이라 치부하기에 결코 가벼운 감상적인 환상이 아니라, 지금 우리 눈 앞에서 목격되는 자연의 모습이요, 자연과 은총을 함께 바라보아야 할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이 초가을에 생각의 정점이 단순히 쉽게 변하는 자연 속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불변의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인생의 삶의 고뇌는 자칫 잘못 생각하면 <자연>의 나락으로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생각의 고뇌, 삶의 고뇌, 자연의 고뇌가 마치 동류의 것들처럼 <센티멘탈리즘>으로 전락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고뇌를 잘 극복해내면 사람은 보다 더 <하나님의 은총의 빛> 가운데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자연과 은총>을 그 누구보다도 고뇌했던 영적 지도자,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의 명저,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은총은 초자연적인 빛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자연이 정복당하고 지배의 것으로 올리며 이 세속적인 것을 영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자연이 정복당하고 지배를 받을수록 은총은 더욱 더 풍성히 내리고 하나님의 모양대로 날마다 새로워진다”고 <자연과 은총>을 선명하게 구분하게 합니다. 초가을은 <자연과 은총>을 생각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가을 햇살도 하나님의 선물이요, 점점 붉게 물들 단풍잎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연의 섭리 속에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입니다.
한 마리의 새조차도 가볍게 보시지 않으셨던 예수님의 시각은 <자연과 은총>을 언제나 동일선상에서 바라보신 것처럼, 안톤 슈낙이 한 마리의 작은 새의 주검 앞에서 <자연과 은총>이 동시에 공감할 수 있는 맑은 영혼의 세계로 인도한 것처럼, 토마스 아 켐피스가 <자연과 은총>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고 <우주적 혜안>으로 보다 크고, 보다 넓고, 보다 멀리 바라보게 한 것처럼, 우리는 계절이 바뀌고 찾아오는 <인생의 변곡점>에서 <자연>은 스스로 소리를 내지 않고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은총의 선물의 열매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은총은 하나님 한 분에게서만 위로를 구하고 모든 보이는 것에 초월의 하나님의 지고한 선을 즐거워할 수 있을 때 따사로운 초가을 햇살을 받으면서 <생명의 빛>을 감지하고 지금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변화가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나 됨에 감사하고 즐거워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초가을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초가을은 찬란한 빛의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