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 통증이 발단이었다. 정확한 진단명은 요골경상돌기 건초염. 손목에서 엄지로 이어지는 힘줄이 문제였는데 중지는 방아쇠수지증후군까지 겹쳤다. 손을 과도하게 사용해 손목 안쪽 두 개의 힘줄 사이에 염증이 발생하면서 통증이 생기는 거라나. 초기 단계가 지났지만 스테로이드 주사와 수술에 앞서 한방 치료를 시작했다. 한의사의 첫 마디는 “오래 걸리는데. 잘 안 나아요”. 우선 엄지손가락까지 고정시키는 손목 보호대를 착용했고 운동법을 익혔다. 손목 부위의 사용량을 줄이고 휴식을 충분히 취하라는 주의도 들었다. 집에 돌아오니 밤이면 팔을 떼어 버리고 싶을 만큼 어깨를 조여오던 오십견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이번에는 또 어떻게 기나긴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가나 걱정만 하다가 손목 부상 후 극심한 통증으로 옥시콘틴을 처방받아 복용한 후 중독됐던 사진작가 낸 골딘에게 감정이입이 됐다. 옥시콘틴은 지금 미국에 국가적 재앙을 야기하는 ‘펜타닐’보다 먼저 나온 아편 성분의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다. 제약사 퍼듀 파머가 1996년 옥시콘틴을 시장에 출시했다. 매캔지의 마케팅 전략에 힘입어 출시 당시 4,400만 달러(31만6,000건 처방)였던 옥시콘틴의 매출을 2001년과 2002년 합산하여 약 30억 달러(1,400만 건 이상 처방)로 끌어올렸다. 2001년에만 옥시콘틴의 마케팅 및 홍보에 지출한 금액은 약 2억 달러였다. 퍼듀를 소유한 새클러 가문은 2008~2017년 회사에서 100억 달러 넘게 받았다. 이 중 약 절반을 세금이나 기업 재투자에 썼다해도 9년 만에 50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이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옥시콘틴은 가려진 부분이 훨씬 크다. 옥시콘틴의 마약 같은 중독성으로 인해 약 20만 명이 죽었다. 약에 중독된 수백만 명의 희생이 새클러 가문의 자선과 기부의 바탕이라는 사실이 속속 폭로되면서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사진작가인 낸 골딘이 앞장서서 새클러 가문 ‘자선’의 가면을 벗기고자 ‘고통(PAIN)’운동을 전개했다. 환자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2007년 연방법원은 옥시콘틴의 중독위험과 남용 가능성에 대해 규제 기관과 의사, 환자를 오도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당시 합의금이 60억달러에 달했지만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다. 이후 수많은 소송으로 새클러 가문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그 선행은 빛을 잃었다. 미국과 유럽의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 대학과 연구소에서 ‘새클러’라는 현판이 뜯겨나갔다. 스미소니언 국립 아시아 미술관의 프리어 갤러리와 아서 새클러 갤러리는 이름을 가려놓았다. 나쁜 돈으로 구입된 선한 행위가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퇴출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올 더 뷰티 앤 더 블러드쉐드’(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가 바로 옥시콘틴(옥시코온) 중독에서 벗어난 후 사회운동가가 된 낸 골딘의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옥시콘틴 남용의 진실을 밝혀내려는 검사와 피해자, 가해자가 등장하는 실화에 바탕을 둔 범죄 드라마도 나와 있다. 옥시콘틴 남용 사태를 조사하는 검사와 피해자, 가해자가 등장하는 넷플릭스 시리즈 ‘페인킬러’(Painkiller)이다. ‘페인킬러’는 실존 인물들과 허구가 섞여 ‘펜타닐’이라는 국가적 재앙의 원인과 결과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마약성 진통제 남용 위기는 현실이 허구보다 더 비현실적이다. ‘옥시콘틴’을 유통한 제약사 퍼듀 파머는 파산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새클러 가문은 한번도 형사 고소를 당한 적이 없다. 퍼듀 파머는 규제당국, 의사와 환자를 오도하고 중독의 위험을 경시한 소비자 기만 마케팅과 관련해 2007년과 2020년 두 차례 연방법원에서 유죄를 인정했다. 실 소유주인 새클러 가문은 퍼듀 경영진의 위법 행위를 전혀 몰랐다고 주장해 법적 책임을 피했다. 2억2,500만 달러를 내기로 법무부와 합의한 후 퍼듀 파머는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해 민사소송면책을 받으려 했다. 비영리 법인으로 거듭나겠다는 퍼듀 파머의 계획이 파산법원에서 용인되면서 오히려 소송리스크를 피해왔다. 이렇게 새클러 가문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파산보호 제도를 악용하려 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은 제약사 퍼듀 파머와 관련한 파산 합의를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고통을 겪는 인간은 약물에 의존적이 된다. 의사 처방으로 오피오이드를 구입하다가 한계를 넘게 되면 암시장 거래를 하거나 같은 성분이 들어간 헤로인 등 마약에 손을 뻗게 된다. 1924년 미국 내 판매, 수입, 제조가 금지된 ‘헤로인’은 제약사 바이엘이 개발한 오피오이드 만병통치약이었다. 모르핀보다 약효가 50~100배 이상이라는 ‘펜타닐’은 존슨앤존슨 자회사 얀센이 개발한 오피오이드 진통제다. 양귀비에서 진액을 추출해 아편, 즉 오피엄이 만들어진다. 오피엄은 모르핀이 되고 모르핀은 헤로인으로 바뀐다. 또 모르핀보다 강력한 펜타닐이 탄생한다. 출발점은 통증 완화인데 중독이 되고 사망에 이르게 된다.
노화가 시작되면 고통과 함께 살아야 한다. 오피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운동을 하고 자기 관리를 통해 통증을 이겨내며 살아야 한다.
<하은선 LA미주본사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