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행복한 아침] 여름 추억, 냉면 사랑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8-25 08:13:17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정자(시인·수필가)  

 

연일 무더위가 기록적 수치에 도전하고 있다. 말복과 입추를 지난 지도 한참인데 더위가 기승이라 마지막 더위이기를 기대하게 된다. 한 더위와 맞설 수 있는 음식으로 시원한 수박에 냉면 한 그릇이 제격일 것 같아서 계란부터 삶기 시작한다. 냉면 국물은 어제 서둘러 장만해서 냉동 고에 얼려 두었으니까. 한더위 계절 음식으로는 냉면 만한 것도 없다. 더위에 진해진 몸과 마음의 행복지수를 올리기 위해선 더 없는 안성맞춤이요 적격이라 국물 있는 냉면으로 준비했다. 면을 삶고 갖은 고명을 올리고 살얼음 육수를 붓고 보니 미각 적, 시각적인 냉면의 멋을 그냥 흘릴  수 없어 사진 한 컷을 남겨둔다. 냉면 그릇에 서린 서리가 음식 조합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 같아서 쉽게 젓가락질 하기가 그렇다. 젓가락으로 휘 젓고는 육수를 한입 가득 삼키다 보면 목에서부터 명치를 거쳐 시려 오는 짜릿함이 한 더위 열기를 평화롭게 식혀준다. 무더울 수록 냉면 풍미는 한층 더해 지기 마련이다. 여름이면 많이 먹게 되는 소박한 요기 거리로,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을 뿐더러 한국인의 희로애락이 담긴 삶과 문화와 정서가 배어 있다. 시원한 국물을 선호하는 분들은 평양 식으로, 매콤하고 새콤하게 입맛을 자극하고 싶으신 분들은 함흥 식으로 취향에 따라 입맛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묘미도 있다. 뜨끈한 사골 육수를 곁들인 회냉면은 스트레스를 잠재우고, 얼음이 동동 떠 있는 평양 냉면은 국물 한 모금으로 나 홀로 극치에 도달하곤 한다. 음식 진가는 재료 에서부터 손맛과 먹는 분위기에, 식사를 끝낸 후에 오묘하게 남겨지는 뒷맛에 좌우된다. 

 

그 날도 오늘처럼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상록 원 이사장님께서 교사들을 불러모아 냉면 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봉사활동으로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의 노고를 작은 대접으로 나마 베풀고 싶으셨다는 말씀에 모두 숙연해졌다. 상록  원 단체는 육십여 년 전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로 진학할 환경이 열리지 않는 아이들을 모아 기독 청년 회원들이 저녁마다 아이들에게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교육하는 단체였다. 학생들은 학구열로 모여들었고 교사들은 무급으로 봉사했는데 장로 님이셨던 이사장님은 자질구레한 뒷일을 돌봐 주시기도 

하시고 크고 작은 재정적인 문재도 솔선으로 앞장서서 처리하시고 계셨다. 

 

정규 중 고등학교 수업 기준을 수행하기 위해  방학도 없이 야간 수업이 이어졌는데 불 빛을 따라 찾아 든 날벌레와 모기 습격에 아이들도 교사도 팔 다리가 성한 데가 없었다. 배움을 향한 목마름으로 모여든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 앞에 교사들도 밀려드는 졸음을 밀어내며 가르치는 일에 마음을 쏟았다. 아이들은 낮 시간에 일을 하기도 하고 기술을 배우기도 하면서 배움의 길을 택했고 교사들은 직장인으로 대학생 신분으로 사랑 실천에 한 마음이 되어있었다. 식사 시간대가 되면 냉면집 입구에 늘어선 긴 줄에서 한시간 여를 기다려가며 먹을 만큼 소문난 냉면 집이었다. 그 날의 냉면은 젊은 교사들의 시대적 결핍을 채워주었다. 냉면 한 그릇으로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풍족한 마음이 되어 허기진 삶을 따뜻하게 매워주었다. 냉면 한 그릇 조차 제대로 즐기기엔 저녁마다 만나지는 아이들이 마음에 걸려 오히려 시원한 아이스 케익을 나눠주면서 사는 일에 지친 서로의 마음을 시원하게 어루만져주곤 했던 교사들에겐 꿈같은 냉면 대접을 받는 잔치였다. 

누구나 혼자 걸어서 각자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된 것은 아닐 터이다. 그 시절 아이들 등 뒤에는 투박하게 사랑을 실천하는 교사도 있었고 교실을 내어준 학교도 있었고, 이사장님 

같은 묵묵한 배려의 손길도 있었다. 근원적 진솔한 사랑이었다. 부모가 자식 대하듯 베푸는 

태생적인 사랑 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렇듯 아름다운 동행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기대감은 접지 않으려 한다. 우리 집 할배와 냉면을 앞에 놓고 그 옛날 상록 원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둘이 만나게 된 사연이며 우리 아이들을 키워오면서 그 해 여름날의 냉면 한 그릇을 추억하며 살아갈 힘을 얻지 않았느냐고. 그래서 머리에 서리가 앉은 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냉면 추억을 나누었다.   

 

우리는 음식을 먹지만 실은 사랑도 함께 먹으며 살아간다 고운 추억이, 사랑이 담긴 음식을 함께 먹고 싶은 사람과 어울리며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 인생을 안정되고 풍요롭게 하는지 모른다. 때로는 생각이 엇갈리고 이해 관계가 엇나가도 음식 앞에서는 마음이 비워지고 겸손해지고 품위를 가다듬게 된다. 음식은 서로 주고 받기도 하고 마주보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촉매 역할로 마음을 이어 주기도 한다. 유난히 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고 소나기가 찾아오면 얼른 달려나가 우산을 받쳐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옛 노래를 들으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듯 생의 길목마다에는 소중한 추억이 깃들어 있다. 여름 냉면이 이끌어 낸 냉면에 얽힌 일화가 떠올라 훈훈한 온기로 냉면을 대하게 된다. 냉면을 마주 놓고 앉은 노 부부는 여름 나기를 시원하게 보내고 있다. 여름이 담겨있는 추억 거리도 얼마 남지 않은 계절의 소진 앞에 묵직한 엄숙으로 중후하게 남기려 한다. ‘냉면 국물 더 주시오’하는 소리에 추억 속에 잠겨있다 화들짝 현실 시제 속으로 돌아온다. 여름의 마지막 위용이 될 것 같은 한 더위를 추스르며 여름 추억, 냉면 사랑으로 쭈욱 이어질 것 같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애틀랜타 칼럼]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나 보셨나요

세상은 지금 혼돈에 빠져 있습니다. 도덕적 혼돈, 사회적 혼돈, 정치적 혼돈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고 근본적인 혼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란 무

[법률칼럼] 이민국은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는다, ‘보완 기회’보다 중요한 첫 접수

케빈 김 법무사미국 이민제도의 분위기가 다시 한번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이민 신청서에 서류가 부족하거나 설명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추가서류요청(RFE)이나 거절의도통지(NOID

[행복한 아침] 여름 소식

김 정자(시인 수필가)   소나기가 내리려는 지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고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어느 새 주위가 어둑해 지고 섬광이 번쩍인다. 순간 격정적으로 쏟아지는 비가 폭우로 변한

[독자기고]  고 짐 레이니 대사님 영전에
[독자기고] 고 짐 레이니 대사님 영전에

고(故) 짐 레이니 대사 영전에. 전 에머리대 총장이자 주한 미국대사를 역임한 짐 레이니 대사의 영전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박경자."해물 순두부 좋아해요." 정확한 한국말로 순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한미 동(혈)맹의 중요성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한미 동(혈)맹의 중요성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헌법정신 위에 어떻게 세워졌는가? 8, 15 광복절 81주년 기념일을 맞아 우리는 이 진지한 물음 앞에서, 겸허해

[신앙칼럼] 가을의 향성, 투르게네프의 언덕 (The Tropism of Autumn : Turgenev's Hill, 마태복음 7:1~12)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서론]“나는 고갯길을 넘고 있었다…… 그때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19)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19)

2026 연방 보조금(SSI) 연례 보고서 발표와 취약계층 복지 시스템의 대대적 혁신 SSI 전담 개혁실 신설, 실시간 금융·소득 검증을 통한 오지급 방지와 수급자 보호 강화 천경

[추억의 아름다운 시] 승무(僧舞)

조지훈 / 시인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고이 접어서 니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

[삶과 생각] 미국의 승리와 8.15 광복
[삶과 생각] 미국의 승리와 8.15 광복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오는 8월 15일은 광복 79주년이 되는 기념일이다. 79년간 광복절 기념행사를 해 온 것은 거룩하고도 감사한 민족 해방의 국경일이기

[수필] 삶의 축을 찾아가는 길
[수필] 삶의 축을 찾아가는 길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요즘 들어 지난날을 떠올리며 혼자 미소 짓는 일이 늘었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 터다. 그래도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는 기억들이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