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경동나비
엘리트 학원
첫광고

[삶과 생각] 흙에서 숲에서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8-15 14:37:23

삶과 생각,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동부로 옮겨온 지 두 달이 돼간다. 대륙을 건너 새로운 땅에 살기로 작정하면 그것은 새로 이민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 말이 맞았다. 

아직도 자동차에 캘리포니아 번호판을 바꾸지 못하고 다니는 걸 보면 정착하기까지 미진한 일이 남아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제쯤은 나도 피에르 쌍소가 말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터득하며 사소한 일들은 쉬엄쉬엄 챙겨가기로 했다.

자리 잡은 곳은 중부 뉴저지의 나지막한 산기슭, 브리지워터라는 타운쉽이다. 아파트 주변이 울창한 수풀이어서 여름인데도 공기가 청정하고 다리 건너편 시가지에는 2-4마일 이내에 마켓이며 음식점이며 백화점 등이 즐비하게 있어 자연환경과 편의시설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곳이다.

시가지의 반대편 방향인 산 속으로 들어가 잠시 미아가 된 기분으로 꼬불꼬불한 숲속 길을 따라 5마일을 올라가면 그 산등성이에 베스킹 리지라는 동네가 있다. 여기에 사는 딸네가 넓은 뜰의 한편에 제법 큰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 이 텃밭이 나를 이곳으로 유혹한 것이나 다름없다.

본시 6, 7월이 제철인 상추, 고추, 깻잎, 오이, 가지, 호박 등의 야채가 동부지역 특유의 고온과 뜬금없이 쏟아 붓는 소나기 그리고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을 타고 얼마나 잘 자라 주는지-- 싱싱한 먹거리의 외곽으로는 맨드라미와 다알리아, 장미 등 형형색색의 화초부대가 울타리를 쳐주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으레 텃밭에 올라가고 싶어진다. 가서 밤새 자란 야채와 꽃들을 만나보고 그들과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쑥쑥 키가 큰 잡초를 뽑아낸 뒤 물을 흠뻑 뿌려주고 내려오는 일인데 해 뜨기 전의 흙과 풀이 가장 부드럽고 냄새가 좋다는 때문도 있으나 해가 뜨거워지는 시간을 피하려는 이유도 있다.

철저하게 변신한 ‘귀농인’이나 ‘자연인’과는 거리가 먼 ‘초보 농부’에 지나지 않지만 흙속에서 두어 시간 땀을 흘린 뒤 숲의 기운을 받으며 산길을 내려오는 마음은 이전에 누려보지 못한 행복이다. 산길에서 아기 사슴을 거느리고 유유자적 길을 건너가는 사슴이라도 만나면 마음은 더욱 평화로워진다.

땅만 있으면 거의 모두를 개발해버리는 세계 대부분의 국가와 달리 미국은 하와이와 알래스카 주를 제외한 48개주가 면적의 3분의 1을 숲으로 남겨놓고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든 스테이트’라는 별명을 가진 뉴저지는 집만 나서면 도처에 대규모 공원이고 농장이고 정원이다.  

그 숲을 가꾸는 일도 된다고 생각하며 텃밭의 잡초들을 사정없이 뽑아낸다. 그럴 때면 마치 후진국의 용병대장이라도 된 듯 우쭐함에 빠지다가 이내 부끄러움을 느낀다. 흙은 모든 생명을 가리지 않고 포용해주며 그 너그러움에 힘입은 무명의 잡초들마저 저토록 왕성하게 키워 주고 있는데….

흙과 수풀의 세상에서 광복절을 맞는다. 78년 전 우리 선현들은 왜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며 그 벅찬 감격의 시간에 흙을 만져보려 했을까. 무릇 어떤 권력이라도 흙이 주는 생명, 화합,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통합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법률칼럼] 트럼프의 대량 추방대상

케빈 김 법무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이민자 추방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그의 이민법 집행 계획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벌레박사 칼럼] 카펫 비틀 벌레 퇴치법

벌레박사 썬박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집들은 카펫이 깔려 있다. 카펫에서 나오는 벌레 중 많은 질문을 하는 벌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카펫 비틀(Carpet Beetle) 이다. 카펫

[행복한 아침] 자연의 가을, 생의 가을

김정자(시인·수필가)                                       단풍 여행을 떠나자는 권면을 받곤 했는데 어느 새 깊은 가을 속으로 들어섰다. 애틀랜타 가

[삶과 생각] 청춘 회억(回憶)

가을이 되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 생각 중에서도 인생의 가장 치열한 시간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때인 것 같다. 입시를 앞 둔 몇 달, 마지막 정리를 하며 분초를 아끼며 집중했던

[데스크의 창] ‘멕시칸 없는 하루’ 현실화될까?

#지난 2004년 개봉한 ‘멕시칸 없는 하루(A Day Without a Mexican)’는 캘리포니아에서 어느 한 날 멕시칸이 일시에 사라졌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가상적인 혼란을

[인사이드] 검사를 싫어하는 트럼프 당선인
[인사이드] 검사를 싫어하는 트럼프 당선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전 여론 조사에서 트럼프와 해리스가 연일 박빙의 구도를 보였으나 결과는 이를 비웃는 듯 트럼프가 압승을 거두어 모

[뉴스칼럼] 유튜브 채널의 아동착취

가족을 소재로 한 유튜브 콘텐츠가 적지 않다. 주로 부부가 주인공이다. 유튜브 부부는 경제적으로는 동업 관계다. 함께 제작하거나 동영상 촬영에 협력하면서 돈을 번다. 유튜브 채널이

[신앙칼럼] 차원 높은 감사(The High Level Of Gratitude, 합Hab. 3:16-19)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 여호와, 하나님을 감사의 대상으로 삼는

[뉴스칼럼] 슬기로운 연말모임 - 말조심

“아버지가 언제 그렇게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60대의 백인남성은 기가 막혀했다. LA에서 대학교수로 일하는 그는 부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최근 동부에 다녀왔다. 90대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언뜻 보기에 2024년 한해 동안 나라 안팎에서 치러진 선거는 팬데믹 이후의 혼란과 인플레이션에 휘말린 정치 지도자들을 한꺼번에 쓸어간 거대한 물결로 설명할 수 있을 듯 싶다. 지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