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굳이 정한데 없이 문득 생각나면 급조된 만남을 이어온 머리에 서리 앉은 지인들이 기약 없는 만남의 장을 마련했다. 마치 누군가 호루라기를 불면 모여들 듯 오늘도 세월 없는 걸음새로 만남이 이루어졌다. 더 희어질 머리 결도 없어 보이는데도 단정한 모습들이다. 며느님이 사주신 입성이라며, 따님이 선물해준 신발이라며 말쑥하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단장하시고는 어색한데 없는 엷은 메이크업까지 구가하시며 환한 표정들이시다. 할머니 연세에도 멋을 재대로 아시는 분이라 멋쟁이 할머니로 불리시는 분께서 먼저 운을 떼신다. 아주 진지 하신 표정으로 “바르게 잘 살아온 걸까 몰라. 이즈음엔 과연 하루들을 잘 살아내고 있는 건지, 번번히 되묻게 되더라”고 하신다. ‘잘 살고 있는 걸까’ 의문의 꼬리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있는 데도 틈틈이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반복되는 일상 문턱을 넘나들면서 짐짓 발이 겹질리지는 않으려나 노심초사 만큼이다. 심리적, 정신적으로 좀더 안정적이고 보람 있는 여생을 보내기 위한 솔루션이라도 마련하고 싶은 심정으로 최근 담을 털어 놓으신다.
예쁜 할머니라는 별명을 가지신 분의 토로가 이어진다. 나이가 더 해갈수록 말 한마디를 가지고 후회를 하기도 하고, 말 한마디로 문제 제기를 받기도 하고, 주변에 난처함을 초래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는 하소연을 풀어놓으신다. 사실 앞 뒤 정황을 파악해가면서 침착하게 쉬어 가듯 말하기란 쉽지 않다. 혹여 생각없이 했던 악의 없는 말 한마디로 마음이 상한 사람은 없으려니 하면서도 걱정스러운 구석은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가까운 친구일수록 말은 조심해야 할 일이다. 가깝다고 생각할수록 말은 조신해야하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 편인가. 과연 나는 좋은 친구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인품일수록 곁에 친구들이 가득할 것이란 역학이 성립된다. 스스로를 성찰하는 사람은 무례하지 않으며 이타적인 편이라 오래도록 곁에 두어도 좋을 친구로 삼아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평소에 내성적인 편으로 거북스러움이나 어색함을 견뎌내기 힘들어 하시는 분께서 조심스레 사연을 꺼내신다. 이 나이가 되도록 낯 간지러운 표현을 잘 못하신다고 심중을 열어놓으신다. 칭찬 해야할 일과 마주할 때도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쑥스러워 진심 전하기가 어려우시다는 넋두리를 피력하신다. 굳이 칭찬이 아니라 있는 사실을 그대로 나눈다고 생각한다면 칭찬하는 일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제의를 드렸지만 또 다른 측면을 얘기하시는 분이 계신다. 흔한 ‘립 서비스’ 라는 대화의 양념이 난무하는 시대라서 실은 칭찬을 받아도 립 서비스 차원인지 진심에서 우러난 칭찬인지 종종 헷갈리면서 받아도 되는 칭찬인지 불안감이 서성일 때도 있다고 한다.
말수가 적으신 큰 언니 뻘 되시는 할머니께서 가만가만 속 생각을 드러내 놓으신다. 우리 세대는 지난 세대보다 많은 편리함을 누리며 살고 있지만 예전 보다 더 복잡한 사회 구조 속에서 알게 모르게 속앓이를 하며 살아야 하는 어쩔 수 없는 불편함이 끼어들고 있다는 푸념을 시작 하시자 모두들 내 얘기라며 ‘Me Too’ 로 받아들이며 그 간의 어려움들을 쏟아 내신다.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세대로 디지털 문명이 낯설기 그지 없다. 전화도 송수신만으로 충분 한데 영상 통화에 문자 띄우기도 어설픈 체로 겅중겅중 따라 다니는 시늉으로 겨우 모면하며 살아간다. 디지털 문명 앞에 정한데 없는 마음 회오리가 일기도 하고 불현듯 잔잔해지기도 하는 터라 마음 두서 잡기가 힘들어 진다. 얼추 잠에 잠긴 상태라면 모르긴 해도 첨예하게 발전하는 통신 문화에 더는 마음껏 키를 손 쉽게 누를 수 없는 막다른 궁지 앞에 선 할머니들이 되고 말았다. 궁지여책으로 자신을 뒷받침해줄 존재감을 위해 주저없이 배움을 얻어내야 할 용기가 필요한 때라고 이구 동성이다. 배움에 도전한다는 것은 인생 노정에서 첩경에 들어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렇듯 배움을 시도한다해서 갑자기 할머니 변주곡이 Tempo가 빨라지거나 Crescendo 로 내달음 칠 수 있다거나 행복이 배가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더 두텁게 이해하게 되면서 스스로의 평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할지를 찬찬히 알려주는
열린 사람은 귀한 편이지만 그것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 삶의 여정이라 할 수 있겠다. 남은 삶을 위해 어떻게 얼마나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지에 몰두할 일만 남았다. 지금 내 인생 시계는 몇 시 인지를 확인해가면서. 초로의 할머니들이 서로의 심중을 함께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다 보면 유익한 자극을 받기도 하고 서로의 위로가 되는 에너지를 얻기도 하면서 노년의 남은 삶에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이라서 할머니들의 노년 변주곡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감미로운 실내악이 연주되기도 하고 화려한 왈츠 곡으로 바뀌기도 하면서.
어느 누구의 인생이라 한들 후회 없는 삶이란 없겠으나 살아온 삶을 돌아보았을 때 모질고 나쁜 마음 품지 않았고 크게 고약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열심히 잘 살아온 것일 게다. 지난 삶을 초조감으로 돌아보는 노심의 긴장이 다함 없는 아련한 아름다움으로 보인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 이라는 구절이 생텍쥐페리의 소설 ‘ 어린 왕자’ 에서 나온다. 세월을 건너온 할머니 가슴들 마다 자신만의 샘을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 인생이란 삶의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 끝없이 샘을 찾아 다니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할머니 변주곡은 샘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작곡된 아름다운 선율들이 은밀한 샘에서 흘러나오는 것일 게다. 때론 우아하게 때론 조촐한 곡조를 이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