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나(메릴랜드)
정원에 물을 주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불쑥 작고 빨간 열매를 먹어보라 했다. 서울 그것도 종로 출신인 남편은 이런 것(?)을 본 적이 없던 도시 남자고, 나는 어릴 때 뒷산을 마구 누비며 놀았던 촌년 출신이라 그랬는지 아무 생각 없이 빨갛고 포동한 그것을 냉큼 먹게 되었다.
어릴 적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아빠가 정해놓은 피아노를 두드리고 난 후, 잠깐의 짬을 내 뒷산을 뛰어다니던 기억이 있어 그나마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데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 몇 해 전 맞이한 그 뒷산이라는 동산은 그저 자그마한 봉우리 정도였지만, 어릴 때 본 그 뒷산은 지리산이나 백두산처럼 깊고 깊은 산이었고, 그 높이가 가늠하지 못할 정도도 높은 산이었으며, 좁은 산길은 우리의 최대 복잡한 비밀 통로였다. 더구나 어린아이들이 뛰고 걷는 좁다란 오솔길마다 피어난 아카시아에서 풍성하게 풍기는 향은 지금도 내 코끝에 진하게 남아있다.
그렇게 뛰어다니다 빨갛고 올망졸망하고 작고 포동한 열매를 만나면 누구 할 것 없이 그 곁에 쪼그리고 앉아 조막만 한 손으로 손을 뻗어 손톱만 한 딸기를 따먹기 시작했다. 어린아이 키에 맞게 자란 그 열매가 산딸기인지 밭딸기인지 여기 말로 로즈베리인지 그저 꽃송이에서 나오는 달달한 그 무언가를 열심히도 먹었다. 누가 가르쳐 주는 이 없으니 그저 맛난 사탕이나 초콜릿을 산속에서 만난 것처럼 신나서 입술이 붉게 물들도록 따먹곤 했다.
하지만 내가 먹은 그것의 모양은 딸기와 비슷하지만 확실하지 않으니 일단 핸드폰으로 찍었다. 시절이 좋아 금방 확인이 되었는데 한국말로는 산딸기, 영어로는 로즈베리라는 설명이 찍혔다. 어릴 때 소꿉친구와 숲속에서 먹어보았던 그 맛, 그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산딸기였다니 그 기쁨은 오랜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순수한 들뜸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한 송이에 7, 8개가 달려야할 자리에 기껏해야 두세 알이 매달려있는 송이들이 제법 많았다. 그러고 보니 항상 사슴 가족이 이 근처를 배회해서 우리 댕댕이 가출 소동이 벌어지곤 했던 이유가 바로 이 열매 때문이었구나! 갑작스러운 반가운 출몰에 어안이 벙벙하여 급한 대로 손바닥에 하나둘 딴 산딸기가 양손으로 받기 어려운 지경으로 소복이 쌓였다.
산딸기의 면적은 우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었다.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한마디로 지천으로 널렸으니 그만 헛웃음이 나왔다. 산딸기 입장으로 보면 우리 같은 무식한 사람이 주인으로 있다는 것 자체에 굉장히 자존심이 상할 일이다. 매년 그렇게 아름답고 탐스럽게 피워낸 귀한 열매를 알아봐주지 못하고 심지어 독이 들었을 거라는 의심의 눈으로 매번 그 싹을 베어버렸다니 산딸기의 위용은 그저 사슴이나 여우 그리고 새들의 간식거리로만 제공되었을 테니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내친김에 산딸기 주를 만들기로 했다. 한번 눈도장을 제대로 찍어서인지 술을 사러 가는 길 내내 빨간 열매가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나무 아래 새파란 잎들이 포진되어있고 가느다란 줄기 사이사이에 옹기종기 빨갛고 탐스러운 산딸기가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 들고 온 4홉들이 소주 한 병에 산딸기는 약 3/2 양으로 잡고 깨끗이 씻어 종이 타월로 물기를 제거하고 설탕을 적당히 버무려 유리병에 넣었다. 술을 담그는 것이라 거창하리라 생각했지만, 따라 해보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담자마자 살짝 핑크빛이 도는 게 여간 이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적어도 100일이 지난 후에나 나오는 일이라 시작점은 번개처럼 빠르고 쉬웠지만, 그 끝점의 결과는 미지수다.
중요한 건 여름마다 신선하고 달콤한 산딸기 맛을 무한정 맛볼 수 있고 건강에도 좋은 복분자 술을 매년 맛나게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 취한 것처럼 웃음이 난다. 이름이 복분자라 그런지 복을 많이 받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