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엘리트 학원
첫광고
경동나비

[뉴스의 현장] 독주를 부르는 미국 사회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7-12 18:05:02

뉴스의 현장, 남상욱 LA미주본사 경제부 차장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남상욱( LA미주본사 경제부 차장)

만취해 집에 들어온 남편과 이를 부축하며 잔뜩 화가 난 아내, 취한 남편의 옷을 벗기며 대체 누가 술을 권했는지 구시렁 대는데, 이를 들은 남편이 갑자기 정신을 번쩍 차리더니만 “옳지, 누가 나에게 술을 권했단 말이요?” 따져 묻기 시작한다. 아내는 분을 삭이며 “지금 많이 취했으니 내일 술 깨고 (얘기) 하세요” 하는데, “천만에, 나 안 취했어. 누가 나한테 술을 권했을까? 내가 술이 먹고 싶어 먹었나?” 웃는 건지 화가 난 건지 가만히 있는 아내에게 남편은 대뜸 큰소리를 친다. “당신한테 물은 내가 잘못이지. 잘 들어봐요. 내게 술을 권하는 건 이 사회야. 사회가 내게 술을 권한다니까? 되지 못한 명예 싸움, 쓸데없는 지위 다툼, 내가 옳니 네가 그르니 밤낮 서로 찢고 뜯고 하는데 뭔 일이 되겠냐고.  내가 할 건 주정꾼 노릇밖에 없어.”

1921년 발표된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의 일부분이다. 살기 위해,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더 많이 갖기 위해 서로 다투어야 하는 현실을 술로 버텨낼 수밖에 없는 남편의 마음은 100년이 훨씬 넘은 현재에도 유효한 변명이다. 오늘도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 갈 때면 한 잔의 술이 간절한 것은 미국에서의 삶에서도 그대로다.

그래서일까? 미국에서 위스키와 테킬라를 비롯한 독주 판매량이 맥주를 앞섰다. 미국증류주제조협회(DSC)에 따르면 맥주의 시장점유율은 41.2%를 나타낸 반면 독주는 42.9%를 기록해 미국 주류 판매 역사상 처음으로 독주 소비량이 맥주를 제쳤다. 

지난 2000년까지만 해도 28.7%에 그쳤던 독주의 점유율이 그사이 맥주를 앞설 정도로 급증한 셈이다. 맥주가 점유율 1위 자리를 빼앗긴 것 역시 미국 주류업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15개월 동안 10번의 기준금리 인상을 해야 할 만큼 역대급 인플레이션이 독주 소비량을 끌어 올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지만 맥주가 불경기에 강하다는 기존 통념이 깨진 것은 단순히 ‘술꾼’들의 취향이 바뀐 것을 넘어 예전과 달라진 미국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타협과 양보라는 기존 정치 경제적 미덕의 양상이 대립과 대결이라는 모습으로 대체되고 있다. 최근 들어 LA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파업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올해 들어서 LA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시위와 파업의 열기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달에는 LA항과 롱비치항의 서부항만 노조원들의 태업과 부분 파업이 극적인 잠정 합의로 대규모 파업을 피했다. 지난 봄엔 LA 교육구 소속의 학교버스 기사와 카페테리아 노동자, 교사들이 3일 간에 걸쳐 파업을 벌였다.

지난 2일부터 독립기념일 연휴까지 LA와 오렌지카운티 내 대형 호텔에 근무하는 임금 노동자들이 파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기에 지난 5월부터 시작된 할리웃 극작가 조합의 파업은 배우 조합 파업과 맞물려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갈등과 대립의 양상은 비단 노동 현장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적 성향의 연방 대법원은 지난해 낙태권 폐지 판결 내린 이후 올해 들어 대학 입학시 소수계 인종 우대 조치와 학자금 대출 탕감 조치에 대한 위헌 결정,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 커플에게 서비스 제공 거부를 한 사업자에 대한 헌법적 권리 인정 등 보수 드라이브로 일관하면서 미국 사회가 찬반 양론으로 갈라지는 단초를 제공했다.

대립과 대결이 지배하는 사회에 과연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공감의 마음은 존재할까? 그래서 일제와의 타협을 일절 거부하고 대신 술이라면 시간불문에 원근불문을 마다하지 않았던 현진건에게서 미국은 술 권하는 사회, 아니 독주를 부르는 사회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뉴스의 현장] 독주를 부르는 미국 사회
남상욱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법률칼럼] 트럼프의 대량 추방대상

케빈 김 법무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이민자 추방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그의 이민법 집행 계획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벌레박사 칼럼] 카펫 비틀 벌레 퇴치법

벌레박사 썬박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집들은 카펫이 깔려 있다. 카펫에서 나오는 벌레 중 많은 질문을 하는 벌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카펫 비틀(Carpet Beetle) 이다. 카펫

[행복한 아침] 자연의 가을, 생의 가을

김정자(시인·수필가)                                       단풍 여행을 떠나자는 권면을 받곤 했는데 어느 새 깊은 가을 속으로 들어섰다. 애틀랜타 가

[삶과 생각] 청춘 회억(回憶)

가을이 되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 생각 중에서도 인생의 가장 치열한 시간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때인 것 같다. 입시를 앞 둔 몇 달, 마지막 정리를 하며 분초를 아끼며 집중했던

[데스크의 창] ‘멕시칸 없는 하루’ 현실화될까?

#지난 2004년 개봉한 ‘멕시칸 없는 하루(A Day Without a Mexican)’는 캘리포니아에서 어느 한 날 멕시칸이 일시에 사라졌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가상적인 혼란을

[인사이드] 검사를 싫어하는 트럼프 당선인
[인사이드] 검사를 싫어하는 트럼프 당선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전 여론 조사에서 트럼프와 해리스가 연일 박빙의 구도를 보였으나 결과는 이를 비웃는 듯 트럼프가 압승을 거두어 모

[뉴스칼럼] 유튜브 채널의 아동착취

가족을 소재로 한 유튜브 콘텐츠가 적지 않다. 주로 부부가 주인공이다. 유튜브 부부는 경제적으로는 동업 관계다. 함께 제작하거나 동영상 촬영에 협력하면서 돈을 번다. 유튜브 채널이

[신앙칼럼] 차원 높은 감사(The High Level Of Gratitude, 합Hab. 3:16-19)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 여호와, 하나님을 감사의 대상으로 삼는

[뉴스칼럼] 슬기로운 연말모임 - 말조심

“아버지가 언제 그렇게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60대의 백인남성은 기가 막혀했다. LA에서 대학교수로 일하는 그는 부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최근 동부에 다녀왔다. 90대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언뜻 보기에 2024년 한해 동안 나라 안팎에서 치러진 선거는 팬데믹 이후의 혼란과 인플레이션에 휘말린 정치 지도자들을 한꺼번에 쓸어간 거대한 물결로 설명할 수 있을 듯 싶다. 지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