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삶과 생각] 어느 흑인과의 대화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4-11 15:06:46

삶과 생각, 문일룡 변호사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문일룡(변호사)

두주 전 일요일 보스턴에 사는 큰 애 집에 다녀왔다. 새벽 일찍 떠나 밤늦게 돌아오는 하루 여행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바로 옆에 앉은 흑인과 내내 대화를 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였지만 대화는 진지했다. 아니 어쩌면 모르는 사이였기에 눈치 볼 필요 없이 그런 대화를 가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화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 흑인이 90퍼센트 이상 얘기를 했고 나는 간간이 질문을 던졌다.

내가 비행기에 올라 내 자리를 찾아갔을 때 그는 내 자리에 앉아있었다. 나를 보자 머쓱해 하면서 혹시 자리를 바꿔 앉으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나도 창가보다는 복도 쪽 자리를 선호하는데다 그 사람이 굳이 복도 쪽 자리에 앉아야하는 이유도 없어 보여 그냥 내 자리에 앉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몇 마디 건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 흑인은 라스베가스에서 며칠 보내고 보스턴을 경유해 워싱턴 DC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임시로 그 곳에서 일하고 있는 약혼녀를 만나고 온다고 했다. 자신이 돌보는 애가 5명이나 되는데 나이는 1살부터 14살까지라고 했다. 두 명은 자기애들이고 두 명은 약혼녀 애들, 그리고 가장 어린애가 약혼녀와 자신 사이에서 태어난 애라고 했다.

14세 짜리는 자신의 애라고 했다. 그런데 그에게 나이를 넌지시 물어보니 29살이란다! 그러니 틴에이저 나이에 아버지가 된 셈이었다. 그래서 무례함을 무릅쓰고 어떻게 그렇게 이른 나이에 아버지가 되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그 때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자신을 과시하는 상징이기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애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절대로 원치 않는다고 했다. 자신은 부모 없이 할머니 아래에서 자랐는데 제대로 훈육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다닐 당시 농구를 잘했다고 했다. 키는 크지 않아 포인트 가드나 슈팅 가드 역할을 맡았고 워싱턴 DC 올스타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에 농구 장학생으로 진학하고 싶었는데 그 꿈이 중간에 수포로 돌아갔다. 어느 날 자신이 피할 수 있었던 자리에 있다가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고 했다. 농구선수로의 마감을 고할 수밖에 없는 큰 부상을 입었다.

동생도 한 명 총기 사고로 잃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의 상당수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범죄에 연루되어 죽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자랄 때 겪었던 부모 부재의 아쉬움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처음 만나는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자신을 보니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겐 꼭 했어야 했는데 못하고 속으로 응어리진 채로 가지고만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 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현재 트럭운전사로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5명의 애들 모두 친아버지처럼 돌보고 있고, 다행히 학교에 다니는 4명 모두 공부를 잘해주어 고맙다며 자식들은 자신처럼 힘든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런 삶은 자신의 대에서 고리를 끊어야한다고 했다.

워싱턴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오랫동안 교육 분야에서 일했던 나도 가난의 대물림에 대해 많이 고민한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또한 신문이나 보고서 등을 통해서만 접했던 이야기들을 그러한 삶을 실제로 겪으며 살았던 사람에게 직접 들으니 너무 생생하게 다가온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언제든지 페어팩스 카운티에 와서 시간 여유가 있으면 연락하라고 내 명함을 건네었다. 

한 시간 남짓의 대화, 아니 들은 이야기가 이렇게 진한 여운을 남긴 적도 드물었다. 

[삶과 생각] 어느 흑인과의 대화
문일룡 변호사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독자기고]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매김 한 K-컬쳐
[독자기고]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매김 한 K-컬쳐

김대원(애틀랜타 거주) 요즈음 케이 팝과 한국의 민요인 아리랑 그리고 구곡간장을 녹이는 판소리를 배우고 싶어하는 10대 20대의 젊은 외국인들이 대단히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온

[법률칼럼] DACA, 2026년 현재와 미래… 드리머들의 선택은 무엇인가

케빈 김 법무사 2012년 시작된 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는 미국에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입국한 서류미비 청년들에게 추방을

[행복한 아침]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일들

김 정자(시인 수필가)   하루 일상의 시작은 식사준비에서 시작된다. 매일 설거지하고 치우고 닦기를 번복해도 그리 표시가 나지 않는데 며칠만 손을 놓으면 당장 뒤죽박죽에 난장판 일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 바라보기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 바라보기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초여름인 6월의 날씨는 밤새 내린 비로 인해 봄날의 산들바람처럼 싱그럽다.빗물 머금은 풋풋한 신록의 나무 잎새는 부드러운 바람결에 하늘거리고 있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17)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17)

대대적인 디지털 대전환 선언: 사회보장국(SSA)의 운영 혁신과 은퇴자 가이드종이 없는 모바일 SSN 도입, 24시간 디지털 서류 제출 등 대고객 서비스 개편 총정리 천경태 (금융

[신앙칼럼] 폭염의 향성: 솔라 피데(Tropism in the Sweltering Heat: Sola Fide, 마태복음Matthew 26:39)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서론: 믿음의 향성(Tropism of Faith)프랑스 작가 나탈리 사로트(Nathalie Sarraute)는 자극에 끌려 미세하게 반

[추억의 아름다운 시] 나무들

조이스 킬머 나는 결코 볼 수 없으리나무처럼 사랑스러운 시를 굶주린 입으로단물 흐르는 대지의 젖가슴을 물고 있는 나무 온종일 하느님을 바라보며잎새 무성한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 

[삶과 생각] 한국전 기념 및 헌화행사
[삶과 생각] 한국전 기념 및 헌화행사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한미우호협회(회장 박선근, 이사장 프랭크 브레이크)가 주최한 한국전 기념 및 헌화 행사가 지난 7월 24일 엄숙히 거행됐다.1992년부

[수필] 뒷짐 진 삶에게 던지는 질문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평소 같으면 골프를 치고 돌아와 가방만 슬쩍 던져놓고는 조용히 제 할 일을 하던 과묵한 남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현관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 클레임, 무조건 신청해야 하나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 클레임, 무조건 신청해야 하나

최선호 보험전문인 똑같은 물건을 남보다 비싸게 사면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든다. 더구나 옆집 사람과 완전히 같은 물건을 샀는데 나만 더 비싼 값을 냈다면 더욱 기분이 좋지 않다. 보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