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서울경제 베이징 특파원)
3월 중국에서 연중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가 열렸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집권 3기가 출범하면서 새 지도부가 들어서며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에 주재하는 특파원들에게도 현장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어렵게 현장에 참석했지만 질문의 기회를 얻기는 어려웠다. 모든 게 중국이 의도한 대로 이뤄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다른 한국 특파원은 물론 현장에서 만난 다양한 국가의 기자들도 대체로 공감한다. 기자들은 중국이 해당 시점에 자국과의 외교 상황이 좋거나 우호적인 관계 설정이 필요한 국가의 매체를 위주로 행사에 초청하고 질의응답에서 질문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믿고 있다.
단순한 의심만이 아니다. 양회를 기준으로 한국을 예로 들어보자. 양회의 하이라이트는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에서 국무원 총리가 발표하는 업무보고다. 기자들의 경우 전인대 폐막식 이후 열리는 총리 기자회견에도 관심이 쏠린다. 주요 현안을 총리에게 물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 언론은 아무도 질문 기회를 얻지 못했다. 현장에서 많은 기자들이 질문하기 위해 손을 들지만 사실상 질문자와 질문은 사전 조율된 상태다. 한국 기자들에게는 애초에 기회가 없었던 셈이다.
2014년 이후 올해까지 지난 10년간 한국 언론이 전인대 총리 기자회견에서 질문한 것은 단 세 차례뿐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만 해도 한중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전년도에 시 주석이 한국을 국빈 방문했고 2015년에는 박 전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에 참석했을 정도다.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던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2018·2019년 연이어 한국 언론은 당시 리커창 총리에게 질문했다. 그게 마지막으로 올해까지 한국 언론은 중국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한국의 외교는 이전 정부 대비 미국·일본과 더욱 가까워졌다. 중국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중국을 견제하는 발언을 할 때마다 집중 조명하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이 당선되자 시 주석은 당선인 신분인 국가 정상에게 이례적으로 축하 서한을 보내며 수교의 초심을 지키자고 했다.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주중한국대사로 윤 대통령의 고교 동창이자 절친인 정재호 대사가 선임되자 내심 중국은 양국 관계가 좋게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한중 수교 30주년을 앞두고도 중국은 겉으로는 “한중 양국은 떨어질 수 없는 이웃이자 파트너”라고 강조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미일이 더욱 돈독한 공조를 보이면서 중국으로부터 한국은 멀어지고 있다. 한국이 그렇다고 중국을 멀리하는 입장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외교는 적대감을 줄이고 중립 관계를 우호적으로 전환하며 협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외교는 미국·일본과 협력을 강화하는 데 치우쳐 있다.
문제는 외교와 경제는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이 반도체지원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내놓는 사이 한국 기업의 어려움은 커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이 연이어 중국을 찾았지만 말을 아낀 것도 한국 기업의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중 관계가 살얼음판을 걸으면서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기업들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회복을 외치며 대외 개방을 강조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최근 중국에서 사업하는 한국 기업들은 중국 지방 정부로부터 세무조사 등을 빌미로 시달리는 상황이다. 기업인들은 이 모든 게 한중 관계가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 정부는 대통령부터 외교부 공무원까지 최근 ‘경제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한국의 교역 1위 국가인 중국을 상대로 과연 경제외교가 이뤄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