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숲길 짙어 이끼 푸르고나무 사이 사이 강물이 희여
햇빛 어린 가지 끝에 산새 쉬고
흰구름 한가히 하늘을 거닌다.
산 까마귀 소리 골짝에 잦은데
등 넘어 바람이 넘어 닥쳐와
굽어든 숲길을 돌아서 돌아서
시냇물 여음이 옥인듯 맑아라
푸른 산 푸른 산이 천년만 가리
강물이 흘러 흘러 만년만 가리
산수는 오로지 한폭의 그림이냐 (시인 신석정, 산수도, 전문)
구름이 떠가며 무어라 하던?
골에서 봉우리에서 쉬어 가자 합데다.
바람이 지내며 무어라 하던?
풀잎에 꽃잎에 쉬어가자 합데다.
종소리 어쩌자고 메아리 하던?
불러도 대답없어 외로워 그런데요.
누구를 부르기에 외로워 그런다던 ?
불러도 대답없는 사람이 그립데요.
내 영혼을 맑게 흔들어 깨우는 시인의 가슴은 이 봄 잠들은 내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
살얼음 헤치고 살포시 꽃내음을 알리는 들꽃 한송이 하도 땅이 훈훈해서 거기 머물고 싶지만/손에 손을 불끈 쥐고/ 볼에 볼을 입맞추고 / 그렇게 차가운 엄동설한에 봄은 우리 핏줄을 타고 와/호흡은 가뻐도 이토록 뜨거운가 ?어디서 살얼음 풀리는소리 나무들도 살포시 기지개를 켜 세상을 내다본다.
봄 머금은 햇살이 하도 좋아 나도 발을 쭉펴고 하늘을 본다고 시인은 말한다. 시인의 가슴에는 누가 사는가? 뜨거운 심장에는 하늘이 살고, 땅이 살고, 사람이 산다. 심장이 말하는 혼의 이야기를 언어로 토해 내는 시인의 가슴은 고요한 명상, 하늘, 땅이 어울린 신들린 바람아니던가… 신석정 시인의 시는 불교의 선문답 깊은 오래전 이야기를 오늘, 하이얀 화선지에 먹물로 한폭의 산수화를 친다.‘백석 시인이 시 ‘사슴’ 을 읽고 수선화란 시를 보낸다. ‘수선화는 어린 연꽃처럼 오므라진 하얀 수반에 담는다/ 수선화는 아직 햇빛과 은하수를 구경한적이 없다/수선화는 돌 과 물에서 자란 냉정한 식물이 아니다. 수선화는 혀끝으로 봄을 핥으러 애를 쓴다.’ 화답한다.
우리 동네 이웃집에 이름도 모를 꽃 한송이가 영하 30도를 넘는 추위에 몸 하나 상하지 않고 피는 불사조의 꽃이 피어있다. 난 그 꽃이 행여나… 이 강추위에 몸이 녹아 버리지나 않았는지… 꽃을 보러 그 집앞을 서성인다.
겨우내 몇 개월을 온몸에 빛을 발하며 피어 있는 그 작은 꽃의 신비에 내 마음이 어느 은하수 꽃길에 살다가 지구 별에 잠시 머문 신비의 꽃의 신비에 ‘지구 별엔 너를 품어 줄 사람도 없고/ 네가 죽어도 울어 줄 사람도 없다./나와 너/ 무수한 밤하늘의 별 /내마음 둘곳은 /별들이 수놓은 은하수 꽃길이다.’(봄 꽃 한송이에 붙여- 시우)
우리집 정원 뜰에는 기암 절벽 바윗돌이 내 죽마고우들이다. 바위 틈에 작년에 옮겨심은 매화가 추운 겨울을 뚫고 두 번째 꽃을 피웠다. 섧고도 시린 가슴앓이야… 오죽했겄냐만은 선비의 사랑 매화가 꽃망우리를 열고 피는 날… 내 가슴에는 처음으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깊은 산사에 도량석을 도는 스님의 목탁소리라도 들었는가… 참으로 오랜 만남… 내 가슴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내 가슴 속에는
햇빛에 푸른 분수가 찰찰 빛나고 있다.
내 가슴 속에는
오동잎에 바스라지는 바람이 있다.
내 가슴 속에는
바람에 사운데는 꽃이파리가 있다.
내 가슴 속에는
별들이 간직한 하늘의 착한 마음이 살고있다.
내 가슴 속에는
그 아주머니의 싸늘한 젖꼭지를 물고 땅을 허비던 어린것의 뭉개진 손톱이 있다.
내 가슴 속에는
나비의 가녀린 나랫 소리가 있다.
내 가슴 속에는
강물에 조약돌처럼 던져 버린 첫사랑이 있다.
내 가슴 속에는
산에 사는 나무와 나무에서 지줄대는 산새가 있다. [ 시 신석정 -- 내 가슴 속에는 ]
신석정 시인은 ( 1907-1974] 본명 , 석정1930년 , 전북 부안 출신 동국대 불교 전문강원에서 박한영 문하에서 불교 공부 --- 촛불의 시인으로 신석정 문학관에 60여편의 시 보관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