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미래와 희망>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막연한 미래,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분명한 미래, 확실한 희망을 가지고 인생을 설계해야 할 때입니다. 중국의 탕 임금은 대야에 “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이란 글귀를 새겨두고 얼굴을 씻을 때마다 마음에 새겼습니다.“진실로 하루라도 새롭고자 한다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국가의 미래와 희망이 지도자의 선택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일진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경제난국, 총체적 난국인 팬데믹 상황과 더불어 <혜안과 명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설계해야 할 때입니다.
본문의 배경 역시 바벨론 포로시대에 국가의 운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끌어야 할 막중한 책임과 사명을 가진 선지자 예레미야의 <미래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마태복음 5:45에,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머물렀던 바벨론 도성의 불의한 백성들에게나 그 도성에 포로로 잡혀와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나 동일하게 해를 비추시며 비를 내려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원수와 박해자에게까지 공평하게 해와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을 선포하신 분께서 예수님이십니다. 만일, 오늘날 이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미래와 희망>이 있기를 바란다면 그것은“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의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며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갈릴리 어촌 마을에서 지상목회를 하실 때에 천국의 복음을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하여 전하지 않으시고 <구원과 은혜는 공평하게>라는 신념으로 모든 이들을 향하여 전하시며, 특별히 가장 미워하고 원한관계를 품고 있는 일그러진 군상들을 <원수>라 지칭하시면서 그들을 사랑하고, 더욱이 박해를 일삼는 악한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44). 하루 하루를 보내면서 자신이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면경지수(面鏡之水)는 바로 예레미야가 바벨론 포로유수시대에 간절하게 외쳤던 <미래와 희망>을 품고 그 미래와 희망이 막연히 의식주의 번영(Prosperity)를 역점을 두고 사는 것이 아닌, 장차 이 세상을 떠나서 가야 할 천국에 이르기까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미래와 희망>을 날마다 새롭게 또 날로 새로워지는 마음으로 어제의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안일과 나태함의 막연함의 굴레에서 벗어나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미래를 펼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짖은 <박애의 정신>.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마저도 저주가 아니라 <미래와 희망>이 샘 솟듯 하게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미래는 반드시 찾아옵니다. 희망은 의기소침한 우리의 늘어진 어깨를 활짝 펴게 만듭니다. 마음을 다하여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미래와 희망>을 서로에게 비춰주는 세상, 주저앉은 자를 일으켜 주고, 넘어진 자를 붙잡아 주는 세상, 바로 그런 세상이 올 수 있는 최선의 길, 예레미야가 외친 <미래와 희망>,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며 스스로가 <미래와 희망>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 이제 이 거울로 우리의 흐트러진 얼굴을 새롭게 하는 <일일신 우일신>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자신도 모르게 모든 이들의 그늘진 얼굴을 환하게 만들어줄 <미래와 희망>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