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숙명여대 미주총회장)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늦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어머니,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경, 옥, 벌써 어머니가 된 애들의 이름
가난한 이웃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시인 마리아 릴케 이름들을 불러봅니다.
이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히 멀듯이
어머님 당신은 멀리 하늘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시인 윤동주 별 헤는 밤]
마지막 고운 갈잎새들이 사라질까봐 돌산 호수에 잠든 풍경을 보고 싶었다. 황금빛 잎새들이 호수에 녹아 있었다. 호수속에 돌산은 살아서 출렁이며 청자 하늘이 돌산 모습의 나이테까지 볼 수 있게 반사하고 있었다.
살아서 출렁이는 물결따라 구비구비 황금빛 물결 속에 살아서 움직이는 신선이었다. 새벽 안개 보듬고 깨어난 돌산은 밤새 출렁이는 맑은 호수가 사랑으로 가슴에 품고 키워온 우주 속의 돌멩이 하나다. 아마 내가 이 세상을 떠나면 그 은하계에서 나의 돌산을 다시 찾을지도 몰라-가끔 호수에 잠든 돌산 모습을 보고 싶으면 아침 해뜨는 시간에 고운햇살이 산을 품은 천연의 빛, 호수를 찾는다. 물결따라 변화된 돌산이 영원을 향한 손짓을한다.
숱한 세월 이민의 삶, 궂은 비 다 맞으며 살아왔는데- 무엇이 남았는가? 그리움이란 가슴깊이 숨겨두고 무엇을 찾아 타향에 머물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붓을 놓지 못한 단 하나의 이유도 나처럼 그 한사람에게 보낸 나의 연서인지도 모른다. 내가 울 때, 그때 내가 어디에 있었던가--
어느 날 신문에 그리운 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가 뜨고 왜 그토록 외로워할 때 찾아가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한 그리움때문이다.
돌산 기슭 호숫가에 물결에 씻겨져 거의 넘어져간 솔 한그루를 곁에 있는 단풍나무가 솔을 부둥켜 안고 살고있다. 행여나 솔이 넘어질까봐 몇 겹으로 뿌리를 보호하고 주변을 단풍나무 뿌리로 흙을 덮고 솔을 키우고 있었다.
거의 반백년을
돌산 아래 살면서
비바람에 씻기고
아파하는 돌산을 울어본 적이 있었나---
억겁의 세월풍상에 살이 패이고
눈물 자국 흥건한
너를 나는 아파하지 않았다
'너도 나처럼 외롭구나'
사람이 버린 솔 한그루
가슴으로 껴안고 솔을 키운 단풍나무
한 그루만 못한 내가
사람임이 부끄러워 ---
헨리 소로의 경전 ‘월든’을 읽을 때마다 아-- 내가 돌산 아래 산다는 것은 하늘이 주신 내 생애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신발 갈아신고 5분 거리에 그 맑은 호수에 돌산이 잠들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축복은 내 생에 보화 중 보화다.
황금빛 출렁이는 호수에 ‘유유자적’ 하루를 즐기는 물오리들을 보며 인간은 무엇을 찾기위해 한 생을 탕진하는가--- 햇빛 속에 출렁이는 하늘, 바람, 돌산은 신선이 누구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인가---
호수 속 돌산에는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생명, 하늘과 땅이 갈잎새들이 섬광처럼 빛나며 흐른다. 자연의 여신이 선물한 그 순수함, 거긴 사람이 남기고 간 배신도 없고, 돈버는 기계를 만들 학교도 없다.
아침 아지랑이 태양의 솔이 햇살이라는 걸레가 마음을 맑게 닦아주면 신선이 된다. 약탈해 갈 숨겨놓은 재산도 없다.
앎이란 무엇인가, 문명이란 무엇인가, 돈을 벌기 위해 한 생을 탕진하고도 눈을 감지 못할 길잃은 인간의 초라한 모습을 본다. 손가락에 작은 다이아몬드 하나 걸기위해 한 생을 탕진한 인간들 세상, 맑은 빛의 호수에 비치는 거대한 다이아몬드 빛의 호수에는 너무 커서 볼 수 없는 ‘코이 누아 다이아몬드’ 이 맑은 호수, 우리의 인격보다, 삶보다 숭고하고 얼마나 아름다운가!
돌산을 품은 청자 호수 가를 보라보며 정신이 반짝 들었다. 넌 가짜 인생을 살지 마라, 허둥대지 마라. 나같은 촌부는 세속에 묶여 온갖 사슬에 묶이면 제정신을 차릴수 없는 작은 미물임을 산과 숲을 거닐면서 숲속 경전에서 배운다.
'자연의 농장이여!
그곳 풍경에 가장 풍요로운 요소
순결의 햇빛이다
울타리 두른 너의 풀밭에는
아무도 떠들며 날뛰지 않는다
누구와도 논쟁을 벌이지 않고
어떤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황금빛 천으로 지은 소박한 옷차림
지금도 처음처럼 여전하고 유순하다
오라, 사랑하는 자들아
오라, 미워하는 자들아
성령의 비둘기 자손들아
거기에는 씨앗도 없이 태어난 들꽃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며 생명을 키웠다.[맹자, 11편 '고자 장구' 글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