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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호박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18-10-27 18: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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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 건널목 모퉁이에 잘 익은 호박덩이가 수북히 딩굴듯이 놓여있다. 이 무렵이면 마트마다 호박이 쌓여있고 조형물들까지 넘쳐난다. 한아름도 훨씬 넘을 호박들이 즐비해 있다. 빛 좋은 주황색으로 잘익은 호박을 늙은호박이라 일컫는 것을 보면 늙음이란 생을 잘 익혀냈다는 성숙의 뜻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잘 자라준 호박들이 가을을 향해, 결실을 향해 질주해오는 동안 진홍 빛깔로 익어가기 위해 둥긂의 유연함으로 키워가는 것이 최대 방편이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잘 익은 결실들은 대체로 둥글다. 둥글어진다는 것 또한 익어감이란 말로 통용해도 될 듯하다. 잘 익은 것은 신선도와 직결되고, 맛과 먹음직함을 아우르며 결실의 품질을 결정하는 척도로 가늠되기도 한다. 누렇게 익은 늙은 호박을 볕살이 잘드는 툇마루에 놓아두면 꼭지부터 수분이 말라가면서 단맛이 깊어지게 된다는 선조들의 지혜가 기림 받을만 하다. 잎이나 과육에 독성이 없고 음식으로나 약용으로 사용이 가능한 식품이 호박이다. 애호박은 나물거리로, 찌개거리로 호박전에도 두루 사용되고, 잎은 쌈으로, 늙은 호박은 오가리로 말려두었다가 나물로나 떡으로 먹거니와 해산 부종 해소에 죽이나, 즙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요긴한 목록이다. 손톱만한 씨앗이 심겨지고 연록의 잎을 내밀며 모진 비바람과 폭염을 견디어낸 결실이 불그스름한 풍채로 냉담한 자연을 견디어낸 면모를 풍자하듯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호박은 가족으로 부터 골고루 대접을 받지 못하는 터다. 아무리 싱싱해도 생식용으로 아삭아삭 씹히는 맛을 내는 채소로서는 자격미달이다. 당도가 높다든가 매콤하다든가. 자극적인 맛을 선호하는 신세대 아이들에게는 외면당할 수 밖에. 좋은 맛으로 평가받기 위해 적당한 당도를 함유해야 하기에 그 당도를 생성해내는 과정으로 무더운 땡볕이며 이슬과 서리로, 풍랑같은 바람결도 무릅쓴 생존의 묘미가 숨겨져있다. 호박의 부드러운 속살을 보듬는 방편으로 껍질의 두터움을 단련해내기 위해 주야로 내구력을 키워내며 천둥벼락 소동에도, 강도 높은 태풍에도 무던히 버티어내었기에 풍요로움으로 늙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덩치만 컸지 속은 하냥 물러서 두드러진 쓸모 또한 모호한 편이다. 놓아둘 곳 조차 변변치 못하다. 화훼용도 아니요 그렇다고 특이한 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멋없이 집안 구석에 쌓여있기 마련이다. 겨울을 넘기는 동안 별다른 군것질 거리가 없던 유년시절, 고구마와 동치미의 등장과는 격이 다른 호박범벅은 쓸쓸하고 추운 겨울날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요깃거리로 기억 저편에 자리잡고 있다. 노오란 호박꽃 속에 반딧불을 집어넣으면 호박꽃 초롱이 될거라는 어설펐던 유년의 꿈까지도.

호박이 쌓여있는 더미를 바라보며 마냥 저절로 된 것이 없다는 상념이 밀려든다. 자연에는 재촉이나 서두름이 만들어낸 지름길이 없는 것이라서 아무리 안달해도 순리를 앞당길 수 없는 만상의 상호작용이 만들어 낸 가을 풍광들이며 최선을 다해 익어낸 늙은 호박들의 무구한 조련과 가리워져 있는 발랄함의 기질까지도 엿보게 된다. 나무가지에 조롱조롱 매달려 있을만한 과일은 나무에 열리게 하시고, 수박이나 호박 같은 무게나 덩치가 있는 열매는 넝쿨로 열리게 하시고, 과육의 밀도가 높고 단단한 결실은 땅 속에서 열매를 맺게 하신 창조주의 지혜로움을 입은 뭇 과육의 숙성의 과정들이 묘하기 이를데없다. 

호박은 딱히 관심을 주지 않아도 아무데서나 알아서 잘 크는 편이라 잘 익은 호박의 행복은 잘 익어낸 그 자체일 것이다. 둥근 진홍의 호박으로 늙어가기까지 과정에 충실하다 보면 소중한 결실의 행복을 얻게된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 같다. 좌정하듯 튼실하게 자리잡고 앉은 잘 익어낸 호박에는 희망 같은 씨앗이 무수히 품겨져 있다. 모양좋게 잘 익은 호박의 씨앗은 잘생긴 호박을 키워내고, 반듯한 삶을 살아내는 부모를 둔 자녀들이 반듯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본다. 잘 익은 호박은 바라만 보아도 느긋하고 푸근하듯, 바라만 보아도 편안하고 넉넉한 사람이라면 분명 무수한 상호 관계를 균형있게 만들어 오신 분일것이다. 행복의 가치를 폄하하지 않으며 최선을 다해 나이들어가는 일을 추구해왔을 것이다.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전이되는 분들의 특징은 특별하지 않아서 행복할 수 있기도 하지만 심상하거나 대범을 예사롭지 않게 유지해내는 여력 또한 대단하다 할 수 있겠다. 평범한 행복을 행복인줄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들이 얼마든지 있는 터라서, 평범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풍부한 소유 때문이 아닌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사람, 소탈하게 하고 싶은 일을 누리고 있는 사람, 소박한 소유에도 감사하시는 분들이다. 잘 익은 호박의 평범한 행복을 눈여겨 볼줄아는, 누릴줄 아는, 맑은 가을날이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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