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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머무는 뜰] 사랑의 숨결이 깃든 인생의 그림자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6-04-27 10:23:19

삶이 머무는 뜰, 조연혜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조연혜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지만 우리의 존재를 잘 말해주는 것, 때론 자신이 가늠하는 것보다 크고 깊게 주위를 물들이는 것, 나는 그것을 ‘인생의 그림자’라 부르고 싶다.

얼마 전 닮고 싶은 삶의 그림자를 가진 이웃사촌 한 명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사랑의 언어가 식물이라 말하는 원예가 세라. 우리의 첫 만남은 아쉬운 가을날이 곱게 저물어가던 지난해 11월에 이루어졌다.

하루는 SNS에 모종 세 개를 무료로 나눈다는 글이 올라왔다. 마침 실내에서 키울 화초를 알아보던 터였기에 반갑기 그지없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새 식구를 맞이한다는 설렘도 잠시, 안내된 주소지에 도착한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당연히 꽃집일 거라 생각한 그곳은 꽃집이 아니었다. 아니, 꽃집은 맞았지만 평소 알던 모습과는 퍽 달랐다. 그곳은 그리 넓지 않은 앞뒤 마당에 크고 작은 화분이 즐비한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가정집이었다.

식물과 지독한 사랑에 빠진 듯한 정원사의 아담한 뜰은 한순간에 날 매료시켰다. 평소 자주 보던 잎들도 더 특별해 보이는 공간에서 이제 막 여린 줄기를 곧추세우는 모종 세 개를 골랐다. 사실 그걸로 충분했다. 그러나 막상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니 괜히 겸연쩍었다. 공짜에 익숙하지 않은 게 요즘 세상이니까. 나는 부러 평소 키워보고 싶던 몇 가지를 더 집고 나서야 당당해질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그마저 거저 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겨울엔 많은 화분을 안전하게 관리할 만한 장소가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몰라.’ 나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찾고서야 가벼이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이제 꿋꿋한 생의 의지로 반짝이는 앙증맞은 잎들을 잘 키우는 일만이 남았다.

살아간다는 건 작은 기적의 연속이다. 손마디만 하던 생명들은 기특하게도 시린 날씨를 씩씩하게 이겨냈다. 차가운 바람은 막아주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볕을 쐬어준 덕분일까. 입양한 아이들 모두 야무진 푸른 꿈을 키우며 무럭무럭 자랐다.

세 식구가 단출히 살아가는 집에 생기를 불어넣어준 초록 동무들과 무사히 겨울을 나고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여기저기서 연둣빛 순이 고개를 드는 날이 오자 문득 세라의 뜨락이 떠올랐다. ‘그녀의 봄맞이는 얼마나 싱그러울까?’ 그곳엔 분명 따뜻하고 포근한 희망이 움트고 있을 거라 생각하자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역시 그녀의 화원은 겨울의 길목에서 만났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풋풋함으로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주둥이를 자른 페트병에 흙을 담고 일일이 날짜를 써놓은 수십 개의 용기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건 자꾸만 자연을 등지려는 세상에 소리 없이 목소리를 내는 세라만의 환경 운동법이었다.

그녀는 풀과 나무를 소유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로 여긴다. 이 자세는 그녀의 식물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영양분이다.

“여기 있는 애들은 제가 씨앗부터 키운 자식 같은 존재예요. 무조건 판매할 목적으로 기르지도 않고요. 마당과 차고를 녀석들에게 안식처로 내준 지 벌써 3년이네요. 신기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팔고 싶은 생각이 점점 줄어드는 거 있죠. 이익을 내려고 재배하다 보면 작물을 키우는 기쁨에서 멀어져요. 숭고한 창조물에 값을 매기면 괜히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기도 하고요. 모든 생명은 이미 그 자체로 소중하니까요.”

자연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푼 것을 같은 마음으로 나누는 데서 기쁨을 찾는 그녀에겐 꽃 사이를 오가는 벌조차도 다정한 친구다. 작은 잎의 흔들림, 흙을 비옥하게 가꾸는 벌레들, 순리대로 흐르는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살며 그녀는 매일, 새롭게 자연과 하나가 된다.

넉넉한 그늘에서 쉼을 누릴 때 평온해지는 심리는 사람이나 식물이나 다르지 않나 보다. 그녀의 피와 땀으로 드리운 그늘 아래 자라나는 초목들은 알고 있다. 세세한 손길로 빚은 투박한 밭이 자신들의 가장 아늑한 안식처임을. 여러 모양과 향기로 잿빛 세상을 환히 비추는 녹음의 벗과 공존하는 사이, 세상을 감싸는 그녀의 따사로운 그림자 또한 점점 지경을 넓혀간다. 어쩌면 우리 집에 온 화분들이 겨울을 거뜬히 난 이유도 여기 있는지 모른다. 일일이 씨를 심고 꼼꼼하게 관리한 새싹들이 깊게 뿌리 내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일 테다.

그녀는 그날도 내가 고른 것에 값을 다 치르지 않았다. 자식 같은 화초들을 잘 부탁한다는 당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정성을 쏟아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식물들의 볕과 그늘이 되어주는 수고와 애정이 내 속에 날아들어 심어지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농장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식물들의 어미로 살아온 세라. 손톱 밑에 흙을 묻힌 채로 유년 시절을 보내며 그녀는 정원 가꾸기가 생태계를 회복하는 일이라는 확신을 품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결국 흙으로 돌아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녀를 만난 덕분일까. 요즘 따라 푸릇한 생명체들에게 유독 애틋해졌다. 나는 시시로 소리 내어, 어떤 때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말을 건다. 건강하게 자라달라고, 물이든 공기든 맛있게 많이 먹으라고. 대답은 없지만 내 진심이 잎사귀 하나, 뿌리 깊숙한 곳까지 가 닿을 거라 믿기에 관심을 게을리할 수 없다.

초록이 무성해지는 만큼 내 그림자도 조금씩 길고 풍성해진다는 상상을 하면 가슴이 넓어지는 기분이다. 그 안에서 내 곁의 사람들이, 조금 시들고 목마른 숨결들이 편히 쉬어가길 바라며 오늘도 작은 꽃송이 하나에까지 온정의 눈길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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