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윤동주는 그의 시 〈소낙비〉에서 '카르페 디엠의 피상성(Superficiality of Carpe Diem)'에 관한 시대정신을 단 몇 개의 문장으로 함축합니다.
"바람이 팽이처럼 돈다 / 나무가 머리를 이루 잡지 못한다 / 내 경건한 마음을 모셔들여 / 노아 때 하늘을 한 모금 마시다"
이 시는 휘몰아치는 세상의 자극(소낙비와 바람) 앞에서 휘둘리는 인간의 연약함, 그리고 그 거친 풍랑 속에서 '경건한 마음'을 모셔 들여 마침내 영원(노아의 하늘)을 바라보는 시인의 거룩한 영성을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인간 감정의 기복은 결국 허무의 피상성에 휘둘리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 피상성에 더 이상 굴복하지 않으려면 해답은 하나입니다. 노아가 시대의 급물살 같은 인본주의 앞에 굴복하지 않고 찰나의 허무를 극복하여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실존과 말씀 앞에 자신을 무릎 꿇린 것처럼, 시인 역시 허무의 피상성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서 카르페 디엠의 실체를 극복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카르페 디엠의 피상성이 가진 민낯을 한 줄로 선언합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로마서 8:20). 왜 인간은 어리석게도 허무에 굴복할까요?
[서론] 현대문화의 '카르페 디엠' 붐과 허무의 굴레
오늘날 세속문화와 인본주의는 "현재를 즐겨라(Seize the Day)",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며 '카르페 디엠'을 삶의 최고 미학이자 구원인 것처럼 포장합니다. 찰나의 감정과 현재의 쾌락, 눈앞의 이익에 몰입하는 경향은 겉보기에 당당하고 자유로워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어리석음은 스스로의 힘으로 '찰나적 순간의 피상성과 허무의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0절이 선언하듯, 영원과 창조주 하나님이 배제된 '현재'는 결국 "허무한 데 복종하는(Subjected to Futility)" 유한한 굴레에 갇혀 있을 뿐입니다.
빌 브라이트(Bill Bright) 박사는 4영리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 곧 성경에 근거하는 것이지 우리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기분의 객차(Feeling)를 엔진(Fact) 자리에 놓는 순간 탈선하듯, 영원한 진리라는 엔진 없는 카르페 디엠은 순식간에 즉흥주의의 후회로 귀결된다."
[본론 1] 인본주의의 '파죽지세' vs 복음의 '영원한 섭리'
세상의 인본주의가 순간의 달콤함과 치밀한 계산으로 파죽지세(破竹之勢)처럼 영혼들을 유혹하며 밀려올 때, 크리스천은 찰나에 갇힌 피상적 유희에 삶을 맡기지 않습니다. 찰나를 넘어 영원(Eternity)을 바라보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영적 파수꾼>으로서 복음의 전신갑주를 입습니다.
[본론 2] 카이로스(Kairos)로 승화되는 '참된 현재'
하나님 안에서의 참된 현재는 피상적인 카르페 디엠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인 천우신조(天佑神助)를 경험하는 거룩한 순간(Kairos)입니다. 십자가의 진리(Fact)에 믿음(Faith)을 고정할 때, 비로소 오늘이라는 시간은 허무를 벗어나 열방과 다음 세대를 세우는 영원한 가치로 비상합니다.
시인이, 그리고 노아가 가진 하나님의 불변하는 진리(Fact)에 믿음을 고정할 때 카르페 디엠의 허무가 더 이상 그 어떤 굴레도 되지 않았던 것처럼, 영원과 영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카이로스에 주목하는 순간 '허무의 카르페 디엠'은 '참된 현재의 카르페 디엠'으로 승화하는 것입니다.
[결론] 허무의 사슬을 끊는 단 하나의 길
기복이 심한 내면의 본능을 잠재우는 것은 더 강한 감정적 자극이 아닙니다. 오직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 진리라는 단단한 반석 위에 나를 매어두는 것입니다.
허무에서 영원으로 나아갑시다. 찰나의 감정에 휘둘리던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에 고정될 때, 삶의 순간순간은 피상적인 허무의 굴레를 벗어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천우신조)을 경험하는 거룩한 통찰과 능력의 현장으로 바뀝니다.
어둠이 가장 깊은 순간이 찬란한 광명의 새벽이 다가옴과 같듯, 하나님의 말씀과 영원 앞에 내면을 고정하려고 신고(辛苦)의 노력을 기울이는 그 순간이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 곧 천우신조의 거룩한 카이로스를 한 모금 마시는 영적 승리자가 되는 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결단의 기도]
영생의 소망이 되신 하나님 아버지, 허무의 유혹 앞에 굴복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선한 열심을 가지는 지혜를 주옵소서. 그리하여 마침내 감정 기복의 변천을 초월하는 믿음의 깊은 경지에 이르게 하옵소서. 소망의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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