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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슬픔을 견디는 방식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6-08-03 10:55:33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슬픔을 견디는 방식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몇 년 만에 마주친 친구의 모습은 한겨울을 오래 견딘 나무처럼 앙상했다. 핏기 없이 어두운 얼굴빛과 깊게 팬 퀭한 눈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그녀가 어떤 계절을 지나왔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늦은 나이에 삶이 이토록 송두리째 뒤집히는 일이, 가장 가까운 존재의 상실 말고 무엇이 더 있겠는가.

 

찻잔을 쥐고 있는 친구의 손이 힘없이 떨리고 있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반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일상의 의미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같다고 했다. 평생 아내를 유달리 극진히 보살피던 남편이었다. 세상의 바람을 모두 막아주던 그 유별했던 사랑이 사라진 자리, 텅 빈 공간 속에서 그녀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길을 잃은 채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지나온 시간을 되짚는 내내, 내가 건네는 소리들은 그녀의 외로움을 비껴갈 뿐이었다. 자신의 고통만이 세상의 전부가 되어버린 그녀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어떤 따뜻함도 스며들지 못하는 단단한 고립 속에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잠시 숨을 죽였다. 무슨 말이라도 건네야 한다는 조급함이 밀려왔지만, 이내 내 언어가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 깨달았다. 

 

긴 병간호 끝에 짝을 떠나보낸 그 아득한 절망을, 상실의 깊이를 겪어보지 않은 내가 어찌 감히 그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슬픔이라는 캄캄한 터널을 지나는 이에게 위로의 말은 때로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하는 가벼운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그날 나는 친구에게 아무런 위로도 건네지 못했다. 그저 그 아픈 자리를 조용히 함께 바라볼 뿐이었다.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 문득 친구와 비슷한 시기에 남편을 여윈 선배 한 분이 떠올랐다. 사별 후 선배가 보여준 삶의 궤적은 친구와 사뭇 달랐다. 선배는 집안을 다시 정돈하고, 오랫동안 멈추었던 취미를 다시 시작했으며, 손자의 일상을 다정하게 챙겼다. 아침마다 함께 커피를 내려 마시던 자리에서, 저녁이면 동네를 산책하며 남편을 추억한다는 소식을 간간이 전해왔다.

 

선배는 아픔을 억지로 밀어내며 잊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 슬픔을 삶의 한쪽에 간직한 채, 하루의 리듬을 다시 다듬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교차해 떠올리며 비로소 깨달았다. 슬픔을 견디고 고통을 통과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이토록 다르다는 것을.

 

사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적다. 누군가의 짐을 대신 짊어질 수도 없고, 슬픔의 강을 건너는 속도를 내 뜻대로 재촉할 수도 없다. 강 한가운데 멍하니 멈춰 서 있는 친구와, 작고 단단한 돌다리를 하나씩 건너고 있는 선배. 두 사람을 생각하며 나는 깨달았다. 극복의 정답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으며, 그 아득한 강을 건너는 길은 오직 스스로의 발걸음으로 찾아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문득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 언젠가 내가 같은 일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 친구는 나에게 어떤 마음을 건네줄까.' 

 

그렇다. 어쩌면 진정한 위로란, 슬픔을 순식간에 없애주는 유려한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타인의 아픔에 함부로 조언을 얹지 않는 정중함, 언젠가 찾아올 나의 날을 정직하게 짚어보는 겸손함, 그리고 '너라면 나를 어떻게 건져주겠니?'라고 묵묵히 마음의 손을 내밀어 주는 깊은 공감. 그 진정한 질문이야말로 멈춰 서 있는 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친구가 이 마음의 질문과 직면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스스로 놓아버리려던 자기 삶의 운전대를 다시 가만히 쥐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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