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서론] 장막을 치신 왕: 비굴하지 않은 자존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로고스 예수의 임재, 즉 ‘성육신(Incarnation)’의 사건을 가장 잘 나타낸 통전적인 말씀(A Holistic Message)입니다. 이 성육신의 대표적인 동사 “거하시매”는 그 원 뜻이 “장막을 치다(Tabernacle)”입니다.
왕이신 성자 하나님, 로고스 예수님이 멀리 계시지 않고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의 대의(大意)가 함의 되어있습니다.
첫째, 로고스 예수 그리스도 곁에 항상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비굴하지 않은 자존감(Self-Esteem Without Servility)>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왕과 함께 사는 남자(왕사남)는 곧 ‘왕의 동거인(A person who lives alongside the King)’으로서, 당당히 지녀야 할 <거룩한 자부심(Holy Pride)>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증명된 영광(The Proven Glory)>입니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라는 말씀이 이 거룩한 로고스 예수의 형상을 영광(Glory)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셋째,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Full of Grace & Truth)>입니다. 로고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모든 대가를 다 지불하셔서 그분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무상으로 누리게 되는 하나님의 선물이 바로 은혜(Grace)입니다. 이 은혜로 말미암아 생활의 순조로움과 형통함을 값없이 누리게 됩니다(빌립보서 4:19). “진리(Truth)”는 로고스 예수 자신을 의미함과 동시에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God's Unwavering Promise)입니다.
거룩한 로고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역동성(The Dynamics of the Incarnation of Logos Jesus)을 깊이 신뢰함으로써,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소망했던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습니다.
[본론] 비탄엽풍(悲嘆葉風): 잎새의 실존에서 성육신의 신비로
윤동주가 겪은 ‘비탄엽풍(悲歎葉風, Lamentation From The Wind Rustling Leaves)’은 고향을 잃은 디아스포라의 숙명(The Destiny of the Diaspora)과도 같았습니다. 성경신학의 거장 월터 카이저(Walter C. Kaiser, Jr.)와 메러디스 클라인(Meredith George Kline)은 이 바람 부는 역사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약속(Promise)’과 ‘언약(Covenant)’을 추적했습니다.
그 결론은 요한복음 1장 14절, 즉 ‘로고스(Logos)’가 ‘육신(肉身)’이 되어 우리 곁에 장막을 치신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최근 전 세계에 절찬리에 상영 중인 영화 <왕사남(왕과 사는 남자, The King’s Warden)>의 중요한 대사처럼, 그리스도는 인류라는 ‘선(Good)’을 위해 십자가라는 ‘화(Harm)’를 달게 받으신 “위선피화 오소감심(爲善被禍 吾所甘心, 선한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하더라도 나는 달게 받겠다)”의 진정한 주인공이십니다(요한복음 15:13).
이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로고스 예수는 진리의 빛과 은혜의 생명을 들고 우리 비탄(悲歎, Lamentation)의 한복판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거창한 이론가가 아니라,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곁에 모시고 사는 진정한 “왕사남(The King’s Warden)”입니다.
로고스 예수의 성육신을 통하여 윤동주가 성찰한 ‘비탄엽풍’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겪으신 고통을 생명으로 바꾸는 ‘수평적 은총(Horizontal Grace)’입니다. 인생의 비탄을 낙엽을 흔드는 바람처럼 가볍게 날려보낼 수 있는 힘은 오직 ‘은총의 생명’에서 나옵니다.
비탄엽풍의 신비란 나의 슬픔이 바람에 날려 주님의 은총과 섞일 때, 마침내 그것이 타인을 치유하는 은혜의 물결이 되는 ‘우주적 공명(Cosmic Resonance)’을 일으킵니다. 현하(現下), 고난과 십자가의 역동성이 ‘앙천불괴 비탄엽풍’의 로고스 예수 그리스도의 큰 그림, 즉 수미상관(首尾相關)의 하나님을 성찰하게 합니다.
<수미상관(首尾相關,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은 시작(Beginning)과 끝(End)을 주관하시는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항상 내 곁에 계시니, 어떤 풍파 속에서도 하늘을 우러러 앙천불괴(仰不愧於天)로 일관하게 합니다. 윤동주의 하늘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결론] 앙천불괴(仰天不愧): 왕사남이 누리는 수미상관의 은총
현하, 예수 그리스도의 앙천불괴(仰天不愧)는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가릴 수 없는 부끄러움을 대신 가려주심으로 ‘빛’과 ‘생명’이 되셨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아퀴나스, 토마스 아 켐피스와 함께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거룩한 로고스인 ‘수육(受肉)의 말씀’을 수미상관의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진리의 원천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수미상관의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생명은 성도의 실천에 있습니다. 겸손과 온유, 순결과 용서, 평화를 추구하는 도덕적 실천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게 합니다. 점진적으로 수미상관의 성자 하나님이신 주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순종하는 것,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 그분과 더불어 가장 가깝게 연합해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왕사남의 진정한 당당함의 진수>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 119:105).
하나님 아버지, 삶의 시작에서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그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게 우리를 인도하소서. 어두운 세상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우리 영혼의 등불을 밝혀 주옵소서. 인생의 시작과 끝, 그 사이의 모든 과정을 친히 운행하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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