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수필] 호감과 비호감 사이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6-03-23 09:35:26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호감과 비호감 사이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일과를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던 길에 잠시 마트에 들렀다.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려면 며칠 전 떨어진 간장을 사야 했다. 진열대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데 한 노신사가 내게 도움을 청했다. 그가 찾는 것은 가락국수 국물을 만드는 간장이었다. 적당한 제품을 골라주며 물을 배합해 사용하는 법까지 일러주다 보니, 어느새 십 오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마트를 나서며 "이 바쁜 시간에 간장 한 병 사러 왔다가 웬 오지랖이람."하며 혼자 웃음을 지었지만, 사실 그것은 그의 지적인 모습과 말투에서 느꼈던 호감 때문에 우러나온 기분 좋은 과잉 친절이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마음속에 훅하고 전해지는 '직감'이라는 것이 있다. 호감 혹은 비호감으로 갈리는 이 찰나의 느낌은 순식간에 형성된다. 그 느낌의 주체는 나 자신이기에 상대방을 탓할 수는 없겠으나, 신기하게도 후에 돌이켜보면 상대가 좋은 사람인지, 가까이할 만한 사람인지 판단했던 그 첫 직감이 들어맞을 때가 많다.

 

실제로 미국 프린스턴 대학 심리학자의 실험에 따르면, 호감과 비호감을 판단하는 과정은 단 0.1초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사진을 힐끗 보게 하든, 시간을 늘려 실물로 보여주든, 실험자들이 직감적으로 내렸던 판단은 결국 바뀌지 않았으며 애초의 판단이 맞았음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양로원 입소 상담을 하다 보면 마음속에 거부감이 생길 정도로 비호감을 주는 사람이 있다. 내 편견일 것이라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절차를 진행해 보지만, 그런 경우는 예외 없이 다른 이들과 마찰을 빚고 공동체의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처음 그런 일을 겪었을 때는 한시라도 빨리 퇴소시키는 것만이 최선이라 믿었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을 편히 보내고자 찾아온 노인을 내보내야 한다는 죄책감과 스트레스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로 다가왔다.

 

살면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관계를 하루하루 버텨야 하는 것만큼 마음 상하는 일이 또 있을까. 제각각 다른 노인들이 모여 사는 생활공동체에서 서로 얼굴을 붉히는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이의 삶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울화통이 터질 것 같은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삶의 무게에 발목이 잡혀 떠날 수도 없었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간절했기에,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내가 변하는 것뿐이었다.

 

10여 년 전 양로원을 찾아오셨던 정 할머니가 생각난다. 웃음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을 처음 대했을 때, 비호감의 느낌이 너무 강해 어찌하면 입소를 거절할까 핑계를 찾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할머니의 인생사를 듣고 나니, 연고 없는 타국에서 육십 년 세월을 홀로 지켜낸 그 삶이 연민을 넘어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양로원에서 함께 생활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할머니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난 태어나서 지금처럼 행복해 본 적이 없었어."

 

호감은 유전적 인자가 아니라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사회적 지능 같은 것이다. 이는 체계적인 교육 없이는 혼자서 깨닫기 힘든 영역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호감과 비호감을 가르는 내 직감을 믿는다. 앞서서 남을 돕고 챙기시던 정 할머니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난 후에는 내 직감력의 용도가 달라졌다. 비호감이라는 이유로 지레 피하기보다는, 단 한 가지라도 그 사람에게서 호감을 찾는 일에 초점을 맞추려 노력한다.

 

태어날 때부터 비호감인 사람은 없다. 로또에 당첨되면 몽땅 내게 줄 거라며, 매주 화요일이면 가쁜 숨을 내쉬며 건너 편 주유소로 로또 티켓을 사러 가던 정 할머니가 내게 남겨준 교훈이다. 그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했나 보다. 타인의 삶 속에서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법을 말이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추억의 아름다운 시] 가는 봄 삼월

김소월 가는 봄 삼월, 삼월은 삼질강남 제비도 안 잊고 왔는데아무럼은요설게 이때는못잊게, 그리워  잊으시기야, 했으랴, 하마 어느 새님 부르는 꾀꼬리 소리울고 싶은 마음은 점도록

[수필] 호감과 비호감 사이
[수필] 호감과 비호감 사이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일과를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던 길에 잠시 마트에 들렀다.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려면 며칠 전 떨어진 간장을 사야 했다. 진열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콘도 (Condominium) 도 입주자 보험이 필요한가?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콘도 (Condominium) 도 입주자 보험이 필요한가?

최선호 보험전문인  ‘협동농장’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과거 공산주의 국가에서 시행되던 제도로, 공동의 토지에서 함께 농사를 짓는다는 이름 아래 실제로는 농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

[내 마음의 시] 희망이 싹트는 봄

권 요 한(애틀랜타문학회  회장) 어김없이 찾아온 봄봄비에 겨울은 물러나고연두빛 새 잎이 움틉니다 노란 개나리 눈부신 벚꽃곳곳에 피어난 화사한 봄빛마음에 환희를 안깁니다 움츠렸던

[애틀랜타 칼럼] 행복을 나누는 기쁨

이용희 목사 사람이 행복을 찾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 뿐입니다. 행복이란 결코 자신의 손으로 잡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 그것을 당신에게

[법률칼럼] “갱신이면 끝?” 트럼프 2기에서 달라지는 영주권 재검증

2026년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 영주권 갱신(I-90)은 단순 행정 절차를 넘어 범죄 및 세금 기록, 거주 의사를 재검증하는 과정으로 변모했다. 특히 '지속적 검증' 기조 강화로 과거의 경미한 기록이 시민권 신청 단계에서 추방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철저한 대비가 요구된다.

[삶이 머무는 뜰] 식탁 위에 차려진 위로 한 그릇

조연혜 어떤 만남은 예상을 빗나갈 때 더 특별해진다. 누군가를 격려하고자 마련한 자리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간 그날처럼. 근처 대학 어학원에 다닐 때 한국에서 온 대학생 한 명과

[행복한 아침] 3월 앙상블

김 정자(시인 수필가)   3월의 앙상블은 이미 후렴 부분을 연주하고 있다. 앙상블은 프랑스어로 ‘함께, 동시에’ 라는 뜻을 지녔고, 주로 실내악 조화와 소통과 화합을 상징으로 삼

[신앙칼럼] 짐과 신뢰와 인내: 영광의 길(Burden, Trust, Patience: The Path To Glory, 로마서 Romans 8:18)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C. S. 루이스는 “믿음이란 양철 병정을 살아있는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것” 이것이 ‘믿음’이라 말합니다. <양철 병정(The Ti

[추억의 아름다운 시] 낙화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