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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내 곁을 지켜준 정직한 진심에 대하여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6-03-16 09:22:32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내 곁을 지켜준 정직한 진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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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기회주의라는 단어는 참으로 묘한 이중성을 지닌다. 이익을 찾아내는 영리함이라는 찬사와, 원칙 없이 이익만 쫓는 비열함이라는 비판이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다. 어제는 진보를 외치다 오늘은 보수의 깃발을 들고, 전통을 말하던 입으로 혁신의 선봉에 서는 정치적 세계에만 기회주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 안에서도 기회주의는 아주 노골적인 얼굴로 고개를 들이민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가까운 사람이라고 믿었건만, 어느 순간 그 관계가 철저히 ‘이익’이라는 계산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명백한 기회주의 행위다. 그들은 주어진 기회를 잡지 못하는 어수룩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느라 약속을 번복하고 상황을 주무르는 데 능숙하다. 특히 매달 정해진 시간에 모이는 정기적인 약속은 그 사람의 인간관계 철학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험대다. 모두가 생업의 분주함을 쪼개고 개인의 피로를 눌러가며 한자리에 모일 때, 명분 없는 선약을 핑계로 자리를 비우는 이들. 그들의 ‘선약’은 과연 실재하는 물리적 시간일까, 아니면 치밀하게 계산된 도피일까?

기회주의자들에게 정기적인 모임은 일종의 안전장치, 즉 더 매력적인 제안이 없을 때를 대비해 예약해둔 배수진인 셈이다. 이들은 모임 날짜가 다가올수록 레이더를 바짝 세운다. 그러다 더 큰 이익이 생길 법한 비즈니스 미팅이나 더 자극적인 재미를 줄 만한 제안이 포착되면 가차 없이 기존의 미팅을 폐기한다. 일단 두 가지 약속을 다 잡아놓고 끝까지 간을 보다가, 자신에게 더 유리한 쪽으로 몸을 트는 식이다. 

인간관계를 농사가 아닌 사냥으로 대하는 이들은 늘 허기지다. 눈앞의 먹잇감을 쫓아 화살을 겨누는 사냥꾼처럼, 그들은 더 큰 이득을 얻는 자리를 찾아 끊임없이 눈을 돌린다. 하지만 단체를 이끌다 보면 내 마음을 가장 깊이 울리는 이들은 따로 있다. 화려한 언변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사냥꾼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주는 농사꾼 같은 사람들이다.

기회주의자들이 저울질하며 계산기를 두드릴 때, 이들은 '모임'이라는 약속 그 자체의 무게를 온몸으로 지탱한다. 이들의 성실함은 결코 한가해서가 아니다. 단체를 향한 애정과 운영하는 이에 대한 존중, 그리고 자신이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지려는 고결한 인품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리더의 입장에서 이런 멤버들은 마치 폭풍우 속의 닻과 같다. 그들은 모임의 주인공이 되레 욕심내지 않으면서도, 공동체의 뿌리를 단단히 내리게 한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라는 짧은 인사 속에 담긴 신뢰는 그 어떤 격려의 말보다 강렬하다. 미팅 날짜가 다가오면 당연히 일정을 비우고, 정해진 시간에 자신의 자리를 채우는 이들. 단체를 운영하며 겪은 숱한 일들 속에서 그들이 곁에 있었다는 사실은, 리더로서 느끼는 가장 큰 위안이자 고마움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미팅의 머릿수를 채워준 것이 아니라, 이 모임이 존재해야 할 명분과 리더의 자존감을 온몸으로 지탱해주었다.

리더로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철학은 바로 이 ‘농사꾼의 마음’이 가진 위대함이다. 사냥꾼들이 더 큰 먹잇감의 기회를 찾아 떠날 때, 사시사철 묵묵히 토지를 일구고 지키는 농사꾼 같은 분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리더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내게 화려한 성취보다 중요한 것은 변치 않는 마음이며, 영리한 선택보다 고귀한 것은 정직한 약속의 이행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결국 단체를 끝까지 살아가게 하는 힘은 미련해 보일 정도로 자리를 지키는 이들의 '정직한 발걸음'에서 나온다. 그 귀중한 마음들을 떠올리면, 기회주의적인 이들이 남기고 간 빈자리 따위는 금세 잊히고 만다.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은 단체를 이용하려는 자들이 아니라, 이미 내 곁에서 묵묵히 온기를 나누고 있는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 고마운 얼굴들이야말로 내가 이 단체를 이끌어가는 진정한 이유이자 최고의 보상이다.

우리의 자리를 지키는 그 평범하고도 위대한 힘이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 따뜻하게 지탱할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나는 사냥꾼의 숲을 지나, 농사꾼의 정직한 대지 위에 서서 다짐한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비바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닻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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