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이규 레스토랑
김성희 부동산

[수필] 집으로 가는 길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3-27 18:11:33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집으로 가는 길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교육장에 들어서고 나서야 콧등 위에 안경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필이면 이 중요한 날에 안경을 차에다 두고 오다니. 몸은 이미 빌딩 21층에 올라와 있고, 차는 반마일 떨어진 길 가 주차장에 있으니 어쩌나. 

 

나이 듦을 가장 실감나게 하는 것이 바로 눈이다. 안경 없이는 한 줄의 글도 읽을 수 없는 난시도 문제지만, 귀로 들어도 눈으로 내용을 읽어야 하는 내 학습방법이 더 큰 문제다. 문득 스마트 폰에 돋보기 기능이 있는 게 생각났다. 나이든 동양여자가 강의 중에 줄곧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것으로 오해받을까 봐 걱정되었지만, 그나마 강의를 놓치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오전 교육이 끝나자마자 주최 측이 준비해 놓은 점심도 포기하고 주차장을 향해 냅다 뛰었다. 다시 쓴 안경 덕분에 오후 교육까지 무사히 마치고 수료증을 받고나니, 그제야 시장기가 싸르륵 위벽을 훑는다. 에너지 고갈 상태, 그러나 오늘은 배고픔을 먼저 달래기보다는 아침 내내 기죽었던 마음부터 위로해 주고 싶다. 

 

줄곧 해온 일인데도 가끔 힘에 부칠 때가 있다. 먹고사는 일이라 애써 견뎌내지만 자존감의 그래프가 하향곡선을 그릴 때 쓸쓸한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이럴 땐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보약이다. 혼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장소를 찾아보다가 미드 태운으로 차를 돌렸다. 목적지는 테라스가 있는 유럽풍의 레스토랑, 언젠가 쇼핑을 마치고나서 혼자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던 곳이다. 

 

한 잔의 커피와 샌드위치를 받자마자 마음은 금세 무장해제다. 들리는 말소리 웃음소리, 같은 공간에 있어도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눈이 마주쳐도 이름이나 얼굴을 기억할 필요 없는 무책임한 스침이 좋다. 혼자 시간을 보내노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마치 고독한 철학자가 된 것 같기도 하고, 평범한 일상이 우아하게 업그레이드되는 느낌도 든다. 

 

시장기가 사라지고니니, 반도네온의 나지막한 탱고 음률이 귀에 들어온다. 탁 트인 공간 너머 마주 보이는 빌딩 유리창에 비친 구름과 하늘, 서로의 그림자를 품고 마주 서있는 건물들. 2차선 차도를 따라 꼬리를 물고 오가는 차들의 행렬. 직진하는 차들 사이로 좌회전을 기다리는 차들의 깜박등, 햇살 기우는 보도블록을 걷는 퇴근길 사람들, 거리 풍경에도 저 마다의 서사가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도와 인생길은 참 많이 닮았구나.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는 것, 같은 방향을 달리다가 갈림길에서 헤어지고, 교차로에서 스치듯 만나고, 방향에 따라 도착지가 달라지는 것, 줄지어 달리는 차들처럼 인생길도 누군가와 함께 가는 길이라는 것. 다만, 우리네 인생길의 종착지에서는 후진도 유턴도 할 수 없는 것을 빼면 영락없는 만남과 이별의 인생길 같다. 

 

젊은 시절엔 목적지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길인 줄로 알았다. 나의 가치는 내가 지닌 것들로 정해지고,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내어놓아야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었다. 한 세월 지나고 나니 내가 가치라고 믿었던 대부분이 내 밥벌이를 위한 포장이었고 지위 유지를 위한 허울이었던 것을 알겠다.

 

나는 지금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 걸까? 내 인생길의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성공일까, 행복일까, 사랑일까? 어쩌면 애초부터 답을 낼 수 없는 질문 아니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젊은 시절보다는 덜 치열하고, 덜 인색하고, 덜 탐욕적이 된 지금의 헐렁한 여유로움을 좋다. 인생 끝자락에 들어섰어도 어딘가에 내가 쓰이고, 나에게 의지하는 누군가가 있고, 내가 사는 세상에서 얻는 즐거움이 남아있는 데 조바심치며 더 얻으려 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저무는 햇살에 그림자가 길어졌다, 집으로 가는 길이 러시아워로 혼잡해지기 전에 일어서야겠다. 길가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만으로도 위로받는 내 인생, 심플해서 멋지다.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차고문을 들이받았다면 자동차보험일까, 주택보험일까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차고문을 들이받았다면 자동차보험일까, 주택보험일까

집에서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 가운데 의외로 자주 발생하는 것이 있다. 바로 차고(Garage)에서 일어나는 사고이다. 후진하다가 차고문을 들이받거나, 기어를 잘못 넣어 집 벽을 들

[애틀랜타 칼럼]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하는  지름 길

이용희 목사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설득을 시도하곤 합니다.  이런 경향은 세일즈맨들에게 흔히 나타납니다. 그러나 정말로 완전하게 자신의 뜻

[행복한 아침] 마음이 담긴 말

김 정자(시인 수필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을 깊이 다친 적이 있다. 한참을 따끔하게 보답해 줄 한 마디를 찾아 헤매느라 무수한 말들이 내 마음을 휘젓고 다녔다. 사람마다

[신앙칼럼] 유혹의 안전지대: 하나님의 전신갑주(Beyond Temptation: Standing Firm in the Armor of God, 에베소서 Ephesians 6:11~18)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1. 도입: 인간이 만든 '가짜 안전지대'의 허상 (Illusion of Safety)15세기 영성가 토마스 아 켐피스는 *"유혹을 받을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2)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2)

알아두면 든든한 사회보장국 공식 유튜브 필수 영상 5선과 디지털 소통 가이드온라인 계정·은퇴연금·장애심사·SSI·사기예방까지… 영상으로 만나는 핵심 복지 길잡이 천경태 (금융전문가

[특별기고] 9월 4일, 우리는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별기고] 9월 4일, 우리는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셸 강 (조지아주 하원의원 후보, District 99) 현대·LG ICE 단속 1년, 우리가 묻는 질문은 “어떤 미국을 원하는가”이다 2025년 9월 4일. 조지아 한인사회는

[추억의 아름다운 시] 뒷 산

뒷산 / 신달자 외로울 적에마음 답답할 적에뒷산에 올라가 마음을 벗는다나무마다 하나씩 마음을 걸어두고노을을 받으며 드러눕는 그림자돌아가는 것이 없는 빈 몸이다뒤산은 뒷산은 내 몸이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집 앞 나무를 자르다 생긴 사고, 주택보험이 책임질까?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집 앞 나무를 자르다 생긴 사고, 주택보험이 책임질까?

최선호 보험전문인 나무는 집의 분위기를 바꾸는 가장 훌륭한 조경 가운데 하나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겨울에는 삭막한 풍경에 자연의 멋을 더해 준다. 잘 가꿔진 큰

[애틀랜타 칼럼] 상대방의 위치에서 보라

이용희 목사 우리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 처음부터 서로의 견해가 다른 주제를 꺼내서는 안 됩니다. 서로가 일치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문제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합니다.  그

[독자기고] 건너온 음악, 삶을 보듬다

김건흡(수필가·칼럼니스트) 황혼의 길목에서 가만히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인생의 중요한 모퉁이마다 이름 없는 선율들이 나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악보 위에 새겨진 까만 음표들이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