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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소나기

지역뉴스 | | 2024-08-09 08:04:52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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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시인·수필가)   

 

하늘을 자주 올려다 보게 된다. 흐리고 간간이 햇살이 보이다가 오후가 되면 스콜처럼 한바탕 비 설거지를 하게 만드는 일기가 계속되고 있다. 열대성 폭풍 데비 영향으로 하루 내내 구름으로 일관된 날씨라 오늘 하루만이라도 소나기 없는 날을 보내겠구나 하고 하늘을 올려다 보는 차에 마른 천둥이 포효하듯 기세를 떨친다. 지축을 흔들 듯 무서운 회전음을 내며 숲을 

흔들어댄다. 우람한 나무들이 깃발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지둥 흔들리고 있다. 정적이 흐르더니 한순간 멀쩡해진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창 밖이 어두워진다. 해넘이 시간은 아직 인데. 온통 먹장구름이 어둠을 몰고 밀려드는 기세다. 요란한 뇌성 벽력이 하늘을 휘젓는다. 하늘이 찢어질 듯 비명을 질러댄다. 갑자기 계기 일식이 시작된 듯 시가지가 어둠에 둘러싸여 외등이 밝혀지고 도로에 주행 중이던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빛줄기를 뿜어 내기 시작하자 억센 빗줄기가 퍼붓기 시작한다. 굵은 빗발이 퍼붓듯 흙바람을 일으키며 몰려온다, 창을 통해 훅 끼치는 더운 기운을 품은 메케한 흙냄새가 망향을 불러일으키는 내음으로 피어 오른다. 엄청난 빗줄기를 쏟아부는 소나기도 더위를 식히지 못하고 무르춤 물러 앉았다.   

 

고층 시니어 아파트로 옮겨오기 전까지 만해도 비 오는 날이면 글쓰기를 멈추고 창을 흔드는 빗소리에 귀가 열리곤 했었다. 책상 앞에 앉아 바람소리가 창을 흔들어 대는 소리만 듣고도 가랑비인지 장대비인지 억수인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지붕 위로 갑자기 개구쟁이들이 마당에서 할 일 없이 마구 구르는 소리가 나면 소나기가 지나가고 있을 터였다. 심심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 잊을 만하면 툭툭 처마끝에 빗줄기가 드나들면 가랑비가 내리고 있음이다. 이슬비나 보슬비는 문을 열고 나가보아야 구분이 간다. 얌전한 새색시 맵시로 내리는 비라서 매무새 가늠이 쉽지 않다. 안개처럼 뿌옇게 촉촉하게 감싸는 안개비에, 이슬비 보다 굵고 세차게 내리는 작달비, 장대처럼 굵고 거센 장대비에 멀쩡하게 햇볕이 내리쬐는데 잠시 잠깐 지나가는 여우비, 하늘 둑이 무너진 듯 퍼붓듯이 세차게 내리는 억수라 칭하는 비까지 다양하다. 가끔 산책길에서 안개비를 만나면 가던 길을 멈출 만 한데도 빗속을 마냥 걸어가게 된다. 안개비를 만나게 되는 날이 그리 흔하지 않음이라서. 

 

여학교시절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속으로 몇몇 친구들이 우르르 운동장으로 몰려나가자 덩달아 사춘기 충동이었을까 반 아이들이 모두 운동장으로 뛰쳐나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였을까 환호성이 터져 나와 소나기 빗줄기를 헤치며 번져 나갔다. 무언가 서서히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교복 치마에서 퍼런 물이 흘러내려 종아리에는 푸른 물감이 줄줄 흘러내리고 하얀 양말도 운동화도 퍼렇게 물들었지만 지금도 그 시간이 떠오르면 야릇한 환희의 벅차 오름을 되새기곤 한다. 소나기와 연이 닿은 추억이란 그윽하기도 하고 가물 가물 분간하기 힘들만큼 가마득하니 흐릿하게 남겨져 있는 부분도 있다. 

소나기를 지나치게 과학적이고 학술적 분석을 한다면 낭만은 일찍이 물러나버리고 말 것이다. 

 

일상 중에 접하게 되는 소나기를 포함한 비는 소리로 구분 짓게 된다. 시에 표현되는 시인들의 빗소리를 들어보면, 밤 비 소리를 도란도란 양철지붕에서 울리는 소리로 묘사되기도 했고 닭장 위에서 울리는 곡괭이 소리로 표현했다. 사나운 빗줄기를 ‘빗 발이 온누리를 도리깨질 한다’로, ‘싸리비로 두드린다’로 구현했고, 사월에는 ‘미의 음에’ 칠월이면 ‘솔의 음처럼 높아진다’고 읊기도 했다. ‘진흙탕 물을 튀어 오르게 하는 비에서 원시 내음이 번진다’, ‘한여름 소나기는 소 

잔등을 가른다’ 로 직설적으로 그리기도 했다. 국지성 호우를 시현한 것일 게다.  

생애 속에서 만난 갑작스런 소나기들로 하여 잃은 것도 많음 이요 얻은 것 또한 숱하다. 관계 소나기는 어쩔 수 없이 감내하기도 하지만 갑작스레 퍼부어대는 소나기가 남긴 상처가 선명하게 남겨져 있어 아쉬움의 색상이 심히 어둡다. 반투명 유리처럼 속속들이 보이진 않지만 그 속을 제대로 들여다 보면 자질구레한 더는 사용 불가한 부서진 잔해들, 부패로 분해돼 버려 기능을 잃고 회복하기 어려운 잡동사니, 구질구질한 결핍과 치욕과 모욕의 부유물들이 떠돌아 다니기도 한다. 철없는 아이들 마냥 하나 둘 따질 수도 없음이라서 인내의 기도가 소모되어야 하는 힘든 일들이다. 소나기로 인해 빚어진 추억도 지난 일들도 잊고 싶거나 감추고 싶은 부분도 있음이요, 낭만적으로 채색해두고 싶은, 위장막을 치고 싶은 부분도 있을 것이나 여학교 시절 소나기 추억은 낭만적인 것으로 남겨져 있음이라서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 시절 추억만은 손때를 묻히고 싶지 않음이라서. 

 

소나기 기질이 마음에 든다. 시원하게 내리 쏟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뒤 끝없이 기세를 거둘 줄 아는 호탕한 기백이 취향에 맞는다. 그렇다고 소나기가 마음에 든다고 자주 찾아오는 일에는 손사레를 휘젓고 싶다. 소나기 뒷설거지는 늘 고단함을 남겼고, 인생들이 퍼붓는 소나기 역시 자중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치며,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기에. 인생살이가 빚어낸 소나기 빗줄기에서도 역사를 바꿀 만큼의 영향력이 내재되어 있음을 덧붙이고 싶다. 입추 절기가 들어섰는데 더위가 여전한 걸 보면 소나기 역시 절기와 상관 없이 찾아 오려 나보다. 예찬도 할 수 없는, 밀어낼 수도 없는 소나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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