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금호타이어
엘리트 학원

[주말에세이] 6월의 행복

지역뉴스 | | 2024-06-25 17:00:12

주말에세이,송윤성 수필가,6월의 행복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6월의 이른 아침, 마당에 나선다. 400평 남짓한 내 집터 곳곳에 꽃향기가 좋은 나무를 심고 나만의 둘레길을 만들었다. 새소리를 들으며 이 길을 걷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6월 들어 온갖 꽃향기에 내 걸음은 거북이처럼 느리다. 뒷마당에 첫걸음을 내딛고는 하얀 연꽃처럼 생긴 스위트베이 마그놀리아 꽃향에 멈추고, 모퉁이를 돌아 옆마당의 오크리프(Oakleaf) 수국향에 또 한참을 머문다. 앞마당에 이르러 겹겹의 하얀 꽃잎을 두 팔 벌려 환영하듯 활짝 펼친 치자나무 옆에 앉아 하염없이 그 향에 취하고, 몇 걸음 옮겨 빨간 장미에도 인사를 건넨다.

크지 않은 마당을 그렇게 한 시간을 넘게 돌고 들어와 아침 식사를 챙기고 한국에 계신 엄마에게 안부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내 6월의 일상은 이어진다. 카톡 영상화면이 켜지자마자 엄마는 환하게 웃는다. 혼자 사시는 백발노인인 엄마가 활짝 웃는 일은 드물다. “오늘은 아름채에 간 중에 최고로 내 입에 맞는 점심이 나왔다.” 아름채는 엄마 동네에 있는 노인복지회관이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장기를 좋아하셔서 매일 그곳에 가 장기를 두시면 엄마는 노인들만 있는 곳에 가기 싫다며 수영장과 강의 시설이 있는 다른 문화관을 다니셨다. 근래 들어 무릎 수술 후 찬 수영장 물보다 따뜻한 물에 찜질이 좋다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목욕탕이 있는 아름채에서 따뜻한 물에 찜질도 하고 식사도 하는데, 매번 점심에 소시지, 떡볶이, 순대 같은 아이들이 좋아할 듯한 것이 나오고 입맛에 맞는 건 하나 없다고 불평하시곤 했다. 

“오늘은 비빔밥에, 미역국, 작은 조기에 샐러드까지 내가 다 먹을 수 있는 거였어. 게다가, 점심이나 따뜻한 목욕탕뿐 아니라 아름채 식당엔 휴대폰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봉사자들이 있어. 지난 주엔 문자 보내는 거 배웠는데, 오늘은 내가 받은 사진이나 문구를 다른 이에게 보내는 걸 배웠다.” 엄마의 얼굴은 새로운 것을 학습한 이의 뿌듯함으로 빛났다. “와 정말요? 오늘 받은 것 중 좋은 거 제게 한 번 보내보세요.” 내 말에 엄마는 풀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여름에 덥다고 찬물을 마시거나 찬물에 씻으면 안 된다고 장황하게 설명한 글을 오늘 받았는데, 이걸 복사해서 보내려니 연습을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다.” 봉사자가 보내고 싶은 화면의 문구를 복사해 붙여 보내는 법을 설명해 적어주었는데 아직 연습을 잘 못했다는 것이다. “카톡에서 받는 건 그렇게 하실 필요 없어요. 엄마가 받은 사진이나 글, 영상 옆에 보면 화살표가 있는데 그 화살표 누르면 그 다음에 카톡에서 누구에게 보낼지 정하라고 엄마가 주고받은 이들의 명단이 쭉 떠요. 그중에서 절 지정해 누르고 ‘보내기’를 누르시면 저한테 와요. 지금 이 통화 끊고 한 번 해보세요.”

전화를 끊고 곧이어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영상전화가 왔다. “내가 보낸 거 받았냐?” 네, 받았어요. 막 읽고 있었어요. 내 답에 엄마 얼굴은 환해지셨다. “이렇게 하니 정말 쉽네. 이렇게 쉬운 걸 그동안 핑계만 대고 못 배웠으니… 이제 끊자. 내 친구한테도 보내줘야겠다.” 평소 내가 전화를 끊으려고 하면 혼자 계신 밤이 적적해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으며 나를 붙잡으시던 엄마가 뚝 전화를 끊으셨다.

엄마의 얼굴이 사라진 화면을 바라보며 난 노인복지회관에서 봉사한 분을 떠올렸다. 지난주엔 은퇴 나이에 접어든 듯한 한 남자가 봉사원이었는데 오늘은 가정주부인 듯한 한 여자가 가르쳐줬다고 했다. 작은 씨앗처럼 눈에 크게 띄지 않는 이런 선행이 씨앗이 자라 꽃과 열매를 가져오듯 세상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든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송윤성 수필가>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속보〉90세 한인 애틀랜타 아파트서 칼에 피살
〈속보〉90세 한인 애틀랜타 아파트서 칼에 피살

90세 한인 김준기씨 사망해벅헤드 매리안 노인아파트서 90세 한인 노인이 지난 25일 아침 거주하던 애틀랜타 벅헤드 아파트에서 칼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옆집으로 쓰러진 나무 제거·배상 책임은?
옆집으로 쓰러진 나무 제거·배상 책임은?

나무 원래위치 관계없이 쓰러진 땅 소유주 책임재산 피해만 보험 배상 제거비용은 지원 안해 허리케인 헬린으로 조지아 곳곳에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그 중 강풍으로 인해 나무가  쓰러

또‘금란’… 조류독감에 계란 가격 ‘들썩’
또‘금란’… 조류독감에 계란 가격 ‘들썩’

1년 전에 비해 28% 올라12개가 10달러까지 급증먹기 힘들어지는‘서민음식’   조류 독감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계란 가격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3달러를 훌쩍 넘고 계속 상승하고

살인 누명 이철수 구명운동 다룬  '프리 철수 리', 美에미상 역사다큐 수상
살인 누명 이철수 구명운동 다룬 '프리 철수 리', 美에미상 역사다큐 수상

이태원 참사 조명 '크러쉬'는 수상 불발 영화 '프리 철수 리'의 한 장면/커넥트픽쳐스 제공 미국 내 한인 민권운동에 큰 획을 그은 1970년대 이철수씨 구명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올해 졸업생 SAT 평균 조지아 1030, 귀넷 1016점
올해 졸업생 SAT 평균 조지아 1030, 귀넷 1016점

전국 평균 995점에 비해 크게 앞서귀넷은 모든 재학생 의무적 응시해 7년 연속으로 조지아 공립학교 2024학년 졸업생들이 SAT에서 전국 공립학교의 경쟁자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

미쉘 강 후보 "맷 리브스, 거짓말쟁이" 반격
미쉘 강 후보 "맷 리브스, 거짓말쟁이" 반격

리브스 탈세 공격에 '거짓말쟁이' 응수총기협회 리브스 'A', 강 후보 'F' 등급  조지아주 하원 제99지역구(둘루스, 스와니, 슈가힐)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한국계 미쉘 강

애틀랜타 차타후치강 주변 지역 ‘위험’
애틀랜타 차타후치강 주변 지역 ‘위험’

범람 가능성 커…홍수 경보 발령스머나∙샌디스프링스 주민대피귀넷 소규모 하천도 범람 위기  허리케인 헬린이 애틀랜타를 통과해 조지아 북부 지역을 지나 테네시와 켄터키로 방향을 틀면서

헬린 여파 애틀랜타 공항 대규모 결항사태
헬린 여파 애틀랜타 공항 대규모 결항사태

27일오전 130편…전국1,100편 결항 인근 주들,  조지아주 피해복구 지원  허리케인 헬린으로 애틀랜타 하츠필드-잭슨 국제공항 이용 항공편이 대거 결항됐다. 또 헬린으로 인한

2028년 슈퍼보울 애틀랜타 개최 유력
2028년 슈퍼보울 애틀랜타 개최 유력

10월 15일 구단주 회의 결정애틀랜타 개최 의견 모아져 2028년 슈퍼보울 경기가 애틀랜타에서 개최될 것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왔다.스포츠 비즈니스 저널(Sports Busine

헬린으로 11명 사망∙110만 가구 정전
헬린으로 11명 사망∙110만 가구 정전

주 비상운영센터도 정전 사태  오늘 오후까지 홍수경보 유효 허리케인 헬린으로 27일 정오침 현재 조지아에서 11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약 1백만 가구 이상이 정전 사태를 겪는 등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