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 콘텐츠 유포 나서
재판 판사 딸 좌표찍기도
공화당 대선 후보 자리를 굳혔지만 범죄 혐의가 많아 법정에 자주 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물의를 빚을 게 뻔한 폭력적 콘텐츠를 온라인에 자꾸 올리고 있다. 손발이 묶인 채 납치당하는 모습의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이미지를 공유하는가 하면, 자신을 재판하는 판사 딸의 이름을 공개해 ‘팬덤(열광적 지지자 집단)’에게 표적을 제공하는 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한 픽업트럭의 도로 주행 장면이 담긴 20초 길이 동영상을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루스 소셜’에 게시했다. 해당 차량 후미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결박된 채 모로 누워 있는 장면을 묘사한 듯한 그림이 붙어 있었다. 피랍 상황이 연상되는 그림이었다.
적으로 여기는 인물을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상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도 공유된 동영상에 바이든 대통령이 등장하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친 골프공에 맞고 쓰러지는 역할이었다.
말도 거칠다. 작년 12월 뉴햄프셔주 유세에서 이민자가 “우리나라의 피를 오염시킨다”고 막말한 게 대표적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재집권을 노리면서 트럼프가 폭력적이고 적대적인 표현들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악영향이 분명한 만큼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게 바이든 대통령 측 항의다. 캠프 홍보국장인 마이클 타일러는 “트럼프는 일상적으로 정치적 폭력을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스티븐 청 트럼프 캠프 대변인은 “폭력을 부추긴 것은 민주당원들”이라며 “사법 시스템을 무기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지층의 공격을 유도하는 ‘좌표 찍기’ 행태도 명분은 ‘방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8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성추문 입막음 돈 제공 의혹 사건 재판을 맡은 후안 머천 맨해튼지법 판사를 비판하며 그의 딸까지 싸잡아 매도하고 실명을 공개했다. 머천 판사가 ‘급진 좌파들’을 위해 일하고, 부친이 주도하는 마녀사냥에도 딸이 가담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법조계 시선은 차갑다. 래지 월튼 워싱턴 연방법원 판사는 지난달 29일 CNN 방송에서 “판사들에게 물리적 가해 위협이 없을 때 법치가 기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리처드 루이스 뉴욕주변호사협회 회장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모든 판사는 자기나 가족의 안전에 대한 공포 없이 판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워낙 막 나가다 보니 독한 조롱이 따른다. 공화당전국위원회(RNC) 위원장 출신인 미국 MSNBC방송 정치 분석가 마이클 스틸은 지난달 30일 “말하기 전에 생각한다는 것은 트럼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선다”며 “그는 정치에서나 사업에서나 본능적인 동물”이라고 비꼬았다.
그러나 전략의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4월부터 매주 4회씩 출석해야 하는 뉴욕 법정을 선거운동의 중심에 두고 자신이 마녀사냥의 희생자임을 부각한다는 게 트럼프 심산”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트럼프 1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존 볼턴을 비롯한 과거의 내각 구성원과 참모들이 줄줄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지난달 30일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볼턴 전 보좌관은 28일 프랑스 매체 르 피가로 인터뷰에서 트럼프에 대해 “그는 독재할 두뇌가 없다”에 조롱했다. 가디언은 “볼턴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적 능력을 폄하했을 뿐 아니라 ‘그는 정말이지 (한낱) 부동산 개발업자’라며 직업적 배경도 깎아내렸다”고 전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정치 철학이 없다”며 “그에게 모든 것은 정치적·개인적으로 본인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지에 달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 더힐에 따르면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마크 에스퍼도 29일 “확실히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충신으로 꼽혔던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도 지난 15일 “양심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1년 1·6 국회의사당 폭동을 부추긴 일을 계기로 그에게서 돌아섰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난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트럼프 1기’ 구성원 명단이 화려하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함께했던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윌리엄 바 전 법무장관 등도 모두 ‘안티 트럼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