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출마 자격 제동’ 판결 충격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 출마할 자격이 없다는 콜로라도주의 판결로 인해 미 연방 대법원이 내년 대선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미 여러 수사와 재판에 얽혀 있는 가운데 ‘공’을 넘겨 받게 된 큰 연방 대법원의 움직임이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번 판결이 다른 지역의 비슷한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 측은 이번 사건을 연방 대법원까지 끌고 갈 것이 확실시된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사임으로 이어진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검사를 맡았던 닉 애커먼은 “이번 사건은 콜로라도주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그들(콜로라도주 대법원)은 이번 사건을 매우 심각하게 다뤘다. 이 사건은 50개 모든 주에 영향을 미친다”며 “따라서 이번 사건은 연방 대법원에서 판결이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6 의회폭동 사태 등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와 관련해 이미 4건의 형사 사건 재판을 각급 법원에서 받고 있다. 연방 대법원이 이 중 한 가지 사건만 맡아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당선을 최종 결정한 2000년 대선 이래 최대의 정치적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고 NYT는 전망했다. 데이빗 베커 선거혁신연구센터(CEIR) 대표는 “연방 대법원이 (2000년 대선의) ‘부시 대 고어’ 때보다 더 큰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문제는 연방 대법원이 이미 엄청난 정치적 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는 점이다. 연방 대법원은 작년 낙태권 폐기 판결, 지난 6월 대입 소수인종 우대(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위헌 판결 등 논쟁적인 판결을 줄줄이 내놓아 격렬한 찬반 논란을 일으켰다.
게다가 일부 대법관들이 부자 지인들로부터 향응을 받은 것으로 밝혀지는 등 도덕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연방 대법원의 입지는 더욱 취약해진 상태다. 지난 7월 갤럽 여론조사 결과 연방 대법원의 지지율은 40%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바 있다.
따라서 연방 대법원은 대선과 연관되는 것을 원치 않겠지만, 관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로욜라 메리마운트대 로스쿨의 선거법 전문가인 저스틴 레빗은 트럼프 전 대통령 관련 사건들이 이미 전국적인 논란거리여서 “연방 대법원이 숨을 곳이 거의 없다”고 CNN에 밝혔다.
물론 현재 연방 대법원이 확고한 보수 우위 체제라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연방 대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동안 보수 성향의 대법관을 3명 임명한 결과 연방 대법원은 ‘6대 3 보수 우위’ 체제를 구축, 낙태권 폐기 판결 등 매우 보수적인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또 각종 재판의 결과뿐 아니라 진행 속도와 판결 시기도 주목할 부분이다. 트럼프 측은 대선에서 승리하면 대통령의 권한을 활용해 기소 등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대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최대한 판결을 미룬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각급 법원들도 트럼프 관련 사건에서 시기 그 자체가 이슈라는 점을 알고 있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을 너무 빠르게 진행하면 피고 측의 자기 방어권을 침해할 수 있지만, 너무 느리게 진행해도 유권자가 대선에서 선택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뺏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측은 정치적 운명을 쥐고 있는 연방 대법원을 상대로 ‘지연 전술’을 쓰는 양상이다. 21일 CNN과 악시오스 등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전날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직시 행위의 면책 특권 적용 여부에 대해 신속히 결정해 달라는 잭 스미스 특검의 요청을 기각할 것을 연방 대법원에 청구했다.
변호인단은 역사적인 이번 사안의 속성을 감안해 연방 대법원 판사들이 면책 특권 유무 판단에 조심스럽고 심사숙고하는 태도로 임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234년의 미국 역사에서 (트럼프를 제외한) 어느 대통령도 공무와 관련해 형사 기소를 당하지 않았다”며 “이 사안은 대법원이 결정할 가장 복잡하고 난해하며 중대한 문제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대선 뒤집기 시도 혐의 등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한 스미스 특검은 지난 11일 연방 대법원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면책 특권 관련 판단을 청구했다. 신속한 결정을 위해 연방 항소 법원을 건너뛰고 바로 연방 대법원에 판단을 구한 것이었다.
이같은 특검의 요청을 기각해달라는 트럼프 측 요청은 결국 내년 11월 대선과 그에 앞선 공화당 경선 국면에서 자신이 유죄 판결을 받는 것과 같은 이른바 ‘사법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지연 전술’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