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청소년들 피해 실태 갈수록 심각
가정상담소에 도움 요청·치료 늘어나
타지역으로 전학·홈스쿨링 요청까지
중학교에 재학중인 아들을 둔 김모씨는 요즘 큰 걱정이 있다. 학교 다니기를 좋아하던 자녀가 얼마 전부터 갑자기 학교에 가기 싫어하고 감정의 기복이 크고 대화도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학교 친구들의 이유 모를 언어적 괴롭힘과 따돌림 때문이라는 것을 어렵사리 알게 됐다. 특히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이 소셜미디어와 텍스트 메시지 등으로 김 군에 대한 비방 메시지를 돌리며 왕따를 시키는 등 이른바 ‘사이버 불링’ 피해를 입은 것이었다. 워낙 밝았던 아이라 부모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야할 지 고민이다.
학생간 괴롭힘, 왕따 등을 의미하는 ‘불링’(bulling)이 여전히 미국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남아있는 가운데 한인 학생들의 피해 사례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어 한인 학부모들의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 관련 단체들에 따르면 학교에서 불링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학교로 전학하는 한인 학생들의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상에서 이뤄지는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LA 한인가정상담소(KFAM)는 지난 2021년 부터 ‘불링’ 및 학교 폭력에 대한 전문 상담과 치료 서비스를 시작한 가운데, 2021년 25명, 2022년 30명의 사례가 있었으며 올해도 꾸준히 상담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인들의 전문 상담 서비스 이용률이 낮은 만큼 실제 사례는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이 단체의 설명이다.
KFAM은 상담 서비스 특성상 자세한 피해 내용을 공개할 순 없지만 최근 심한 불링 피해를 당해 LA에서 오렌지 카운티로 학교를 옮긴 한인 학생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캐서린 염 KFAM 소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고 아시안 아이들에 대한 ‘불링’이 늘어났는데, 특히 학교를 가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다 보니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사이버 불링’이 크게 증가했으며 그 수위도 높다.
코로나19 사태는 수그러들었지만 사이버 불링은 그렇지 않은 듯 보인다. 염 소장은 “온라인 특성상 정말 다양하고 특이한 방법으로 불링이 이뤄지는데 결국 불링이 전보다 진화했다고도 볼 수 있다. 피해자에 대한 허위 사실을 배포하며 피해자에 대한 안좋은 시선이나 비난 여론을 양산한다든지, 피해자를 사칭해 나쁜 게시물을 남기는 등 익명성을 악용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많은 피해 학생들이 등교 자체를 원치 않거나 부모에게 홈스쿨링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여론 조사기관 퓨리서치가 2022년 9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전국 학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최대 걱정거리 중 하나가 바로 불링이었다. 1위는 76%가 선택한 우울 또는 불안이었고, 근소한 차이인 74%로 2위를 차지한 것이 바로 불링 피해였다. 이러한 가운데 13세부터 17세까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웅답자 46%가 사이버 불링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한편 전문가들에 따르면 ▲옷이나 가방, 책 등이 인위적으로 훼손됐거나 ▲몸에 의문스러운 상처가 있거나 ▲성격이 소극적으로 변하거나 ▲학교 가는 것을 싫어하거나 ▲귀가 후 감정의 변화가 심해 공격적으로 변한다면 불링 피해를 의심해 봐야 한다.
불링 피해를 확인했다면 다음 단계는 이를 아이의 선생님에게 알리는 것이다. 불링이 학교 내에서 일어났다면 선생님은 물론 학교 측도 이를 인지하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 학교들은 불링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가지고 있다. 학교 측에 불링을 신고할 때는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관련돼 있고, 불링이 일어난 날짜와 시간, 취해진 행동 등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학교 측의 대응이 미지근하다면 교육구에 신고하는 등 적극 대처해야 한다.
<한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