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전쟁 격화…중 노림수
미국의 전방위 반도체 통제에 맞서 중국이 미국의 대표 메모리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을 제재하면서 양국 간 반도체 전쟁이 격화하는 모습이다. 중국의 이번 ‘맞불’ 조치는 미국의 압박에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메시지인 동시에 글로벌 기업들에 보내는 고강도 경고로 풀이된다. 다만 제재 대상과 시점을 고려할 때 미국과의 ‘전면전’이라기보다는 협상력을 높이려는 카드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21일 블룸버그통신·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중국의 전격적인 조치가 일본 히로시마에 모인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맞설 협의체 신설을 공동성명을 통해 발표한 직후 이뤄진 것에 주목했다. ‘반도체 전쟁(Chip War)’의 저자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는 “이번 사건은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려는) G7의 노력에 대한 첫 번째 시험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중국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이 결정한 마이크론에 대한 제재는 ‘중요 정보 인프라 운영자’가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중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CAC는 구체적인 설명은 피했으나 마이크론 제품에서 심각한 보안 문제가 발견돼 안보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컨설팅 업체 올브라이트스톤브리지그룹의 폴 트리올로 중국 담당 수석은 “(이번 제재는) 마이크론에 정말 나쁠 수 있다”면서 “중요한 정보 인프라의 정의가 얼마나 광범위한지에 따라 다르지만 여기에는 금융·교통·에너지 및 데이터센터가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미국은 지난해 10월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를 통해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제재를 시스템반도체에 이어 메모리반도체로 확대했고 중국의 대표 메모리 기업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를 수출 통제 리스트에 올렸다. 비슷한 시기 마이크론은 뉴욕주 북부 클레이에 미국 역사상 최대인 1000억 달러 규모의 대형 공장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중국의 이번 마이크론 제재는 ‘중국의 기술 굴기를 꺾고 미국 메모리 산업을 살리겠다’는 조 바이든 정부의 선제공격에 대한 분명한 앙갚음으로 해석된다. 미 연방수사국(FBI) 출신 홀든 트리플릿은 “미국에 대한 보복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다”며 “순전히 정치적인 결정으로 어떤 기업이든 다음 차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의 조치가 다분히 ‘엄포성’에 가깝다는 분석도 나온다. 마이크론에 대한 제재가 미국과 중국 경제 모두에 그리 치명적이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마이크론의 지난해 매출 308억 달러 가운데 중국 본토 매출은 약 10% 정도로 추산된다. 적지 않은 수치이지만 이미 중국에서는 YMTC나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 같은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기술력이 높아지며 경쟁이 치열해지던 상황이다. 또 구매 불가 업체가 ‘중요 정보 인프라 운영자’로 제한돼 예상보다 매출 감소는 미미할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같은 이유로 중국 입장에서도 마이크론의 반도체가 없더라도 중국 기업들의 반도체 수급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이크론은 몇 가지 측면에서 중국의 좋은 먹잇감”이라고 분석했는데 그 이유는 “중국에는 마이크론의 대안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중국이 실질적으로 경제적 타격을 주기보다는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마이크론을 제재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의 최근 오스트리아 빈 회동을 계기로 미중 당국 간 대화가 재개되는 조짐이다. 당장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이 이번 주 워싱턴에서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을 만나 반도체 제재 문제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재닛 옐런 재무장관 등이 올해 안에 방중을 계획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이날 G7을 결산하는 기자회견에서 “(미중 관계가) 아주 조만간 해빙되기 시작하는 것을 볼 것”이라고 밝혔다.
<윤홍우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