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사용률 저하로 전국 주차공간 남아돌아
운전이나 주차하기 편해 ‘자동차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최근 ‘주차장 다이어트’가 진행 중이라고 월스트릿저널(WSJ)이 2일 보도했다.
가뜩이나 융통성 없는 건축 규제로 주차장이 너무 많은데 최근 자동차 사용률 저하로 곳곳에 남아도는 주차 공간이 늘어나는 ‘역주차난’이 심화하자, 이를 주택공급 등 더 시급한 분야로 활용해 공간 활용도를 높이자는 취지다.
연방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인들의 평균 자동차 주행거리는 2019년 대비 4%가량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3년간 지속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재택근무 확산의 영향으로 차량 이용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미국의 주차 공간은 너무 넓어 탈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부동산업체 컬리어스인터내셔널이 2012년 미국과 캐나다의 주요 도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축제 등 ‘특별 이벤트’가 있는 기간에도 시내 주차장의 최소 20%가 비어있는 상태로 나타났다.
UCLA 도시계획 전공 도널드 쇼프 교수는 미 전역에 걸쳐 주차면이 7억∼20억개 정도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등록된 자동차 1대당 최대 7개의 주차면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처럼 주차장이 과잉 공급된 배경에는 정책적 요인이 크다. 1950년대 자가용 자동차 보유가 급격히 늘어나자 당국은 토지·건물 사용 유형에 따라 매우 엄격한 주차장 확보 요건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LA에서는 교회의 경우 좌석 5개당 주차공간 1면을 둬야 하고, 병원은 병상 하나당 2면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자동차 사용률 감소와 맞물려 대규모 주차장 운영비가 건물 세입자의 임대료로 전가된다는 점도 화두가 됐다. 한 연구에 따르면 차고 1개당 평균적으로 주택 임대료가 17% 올라가고, 임대인의 4분의 3 정도는 차가 없는데도 이에 따르는 비용을 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에 최근 집값 급등으로 주택난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면서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는 이미 새 건물을 지을 때 지켜야 할 최소 주차공간 확보 규정을 폐지했고, 캘리포니아의 경우 지난해부터 주 전역에 걸쳐 대중교통수단 인근 신축 건물에 주차장 관련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주차장 규제와 관련해 예외를 허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시는 주차장이 전혀 없는 104세대 규모의 아파트 건설 계획을 승인했다. 도심 인근에 들어설 이 아파트에는 대신 자전거 보관소가 설치된다.
대형 주차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상업용 건물을 짓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이런 규제 철폐가 실제 도시 발전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확인되기도 한다. 2017년 최소 주차공간 요건을 폐지한 뉴욕주 버펄로시는 3년 뒤인 2020년 시행된 인구조사에서 인구가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구가 증가세를 보인 것은 1950년 이후 처음이었다.
주택·업무용 건물뿐만 아니라 상업시설에도 비슷한 변화가 감지된다. 메이시스 백화점은 일부 주차공간을 없애고 건물을 지어 패스트푸드 점포와 카페, 은행 등에 세를 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주차장 축소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필라델피아 시내 상인협회 간부인 코리 모스코는 예전에 출근할 때마다 차를 세워두곤 했던 주차장 자리에 현재 초고층 건물 신축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며 “아침마다 주차 자리를 찾으려 30분을 더 쓰고 있다”고 푸념했다. 그는 주차 부족으로 인해 인근 가게와 식당을 찾는 고객이 줄어들까 걱정된다며 “사람들이 쉽게 방문할 수 있기를 바라는데, 주차장이 줄어들면 그게 가능하겠나”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