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 ‘안도’…스위스 정부 곧바로 승인
UBS가 위기에 빠진 크레디트스위스(CS)를 32억달러에 사들이기로 했다. 당초 언급되던 10억달러 규모보다 3배가량 높다.
스위스 금융 당국의 의도대로 협상이 성공적으로 매듭지어지면서 세계 금융시장은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당장 오늘(20일) 주식시장서 우려됐던 ‘블랙 먼데이’도 현실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19일 UBS와 CS, 스위스 중앙은행 등은 UBS가 CS를 30억 스위스프랑(32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CS 주주들은 CS 주식 22.48개당 UBS 주식 1주를 받게 된다.
콜름 켈러허 UBS 회장은 “이번 인수는 UBS 주주들에게 매력적이지만 크레디트스위스에 대한 우려가 남아있는 한 긴급지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며 “(CS에) 남아 있는 사업 가치를 지키면서 하방위험을 줄일 수 있는 구조로 거래를 짰다”고 설명했다.
다만 켈러허 회장은 UBS가 인수과정에서 도중에 손을 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There are no options). 이번 인수는 스위스의 금융시장과 글로벌 금융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라고 답했다.
스위스 중앙은행은 UBS의 CS 인수작업을 돕기 위해 최대 1,000억달러의 유동성 지원을 약속했다. 또 일부 자산의 손실이 특정 수준을 넘어갈 경우 이를 보전해주기로 했다.
악셀 레만 크레디트스위스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미국 지역은행이 무너지면서 적절치 않은 시점에 CS가 타격을 입게 됐다”고 했다. 앞서 UBS는 10억달러에 CS를 인수하는 카드를 내놓았으나 CS 측에서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스위스 정부는 CS의 일부 또는 전부의 국유화도 검토했다. 결국 UBS가 가격을 더 써내는 것으로 거래가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스위스 금융감독당국은 UBS의 크레디트스위스 인수를 즉각 승인했다. 매우 이례적인 조치다.
스위스 규제당국인 FINMA는 이날 “FINMA는 UBS의 크레디트스위스 인수를 승인한다”며 “이번 조치는 은행고객과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예금자와 금융시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크레디트스위스를 인수하겠다는 UBS의 제안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임이 입증됐다”고 덧붙였다.
FINMA는 UBS의 크레디트스위스 인수 후 더 큰 자본규제를 받게 돼 있으나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수준의 시간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UBS의 CS 인수 결정으로 CS 모든 창구와 ATM기기, 직불과 신용카드를 포함한 모든 은행 거래는 계속 이용 가능하다고 FINMA는 밝혔다.
스위스 취리히에 본사를 둔 CS는 167년 역사를 지닌 세계 9대 투자은행(IB) 중 하나로, 최근 잇따른 투자 실패 속에 재무구조가 악화한 데다 SVB 파산 여파로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위기설에 휩싸였다. CS가 무너질 경우 실리콘밸리 기술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틈새시장에서 영업해온 SVB 등 중소은행의 파산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세계 경제에 미칠 충격파가 클 것으로 우려된다.
UBS의 CS 인수로 큰 산은 넘었지만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건 아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UBS의 CS 인수 소식이 전해진 직후 부도 가능성을 뜻하는 크레디트디폴트스왑(CDS) 프리미엄(5년 기준)이 최소 0.4%포인트(p) 급등한 2.15%p까지 치솟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CS 문제가 UBS로 전염될 것을 일부 투자자들이 우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월요일 개장 후 UBS의 주가 움직임을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는 셈이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RB·연준) 의장 UBS의 크레디트스위스(CS) 인수에 대해 “금융안정 지원을 위한 스위스 정부의 발표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은 19일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과의 공동 성명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국 은행의 자본과 유동성은 강하고 미국 금융시스템은 회복력이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UBS의 CS 인수로 미국의 은행 불안도 안정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파월 의장은 또 “우리는 국제적인 카운터파트와 함께 (금융안정을 위해)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영필·김흥록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