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X 파산신청 후폭풍… 암호화폐 시장 대혼란
자산 가치 320억 달러로 평가받던 세계 3위의 글로벌 암호화폐거래소 FTX가 결국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부채 규모가 최대 500억 달러에 이르고 채권자가 10만 명에 달하는 이번 파산을 두고 “암호화폐 시장의 금융위기”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월가는 주식 등 다른 자산 시장으로 위험이 확산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FTX는 지난 11일 공식 트위터를 통해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파산법 11조(챕터 11)에 따른 파산보호 신청을 냈다고 밝혔다. 챕터 11은 파산법원 감독하에 구조 조정 절차를 진행해 회생을 모색하는 제도다. 이번에 파산보호를 신청한 기업은 FTX 외에도 알라메다리서치 등 계열사를 포함해 총 130곳이 넘는다. 이 중에는 전날까지 샘 뱅크먼프리드 FTX 최고경영자(CEO)가 “재정적 영향이 없다”고 장담했던 FTX US도 포함됐다.
23쪽 분량의 파산보호 신청서에서 FTX는 10만 명 이상의 채권자에 자산과 부채가 각각 100억~500억 달러라고 명기했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최대 규모의 파산 신청으로 과거 회계 부정으로 시장을 뒤흔들었던 엔론의 자산 규모(600억 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다.
뱅크먼프리드 CEO는 사임하고 그룹의 새로운 CEO로는 존 레이 3세가 선임됐다. 레이 CEO는 공교롭게도 과거 회계 부정을 일으킨 엔론의 회생 과정에서 채권자 쪽 의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인물뿐 아니라 파산 규모와 사안의 성격까지 이번 사태가 엔론 스캔들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래리 서머스 전 연방 재무장관은 “FTX 사태를 리먼브러더스에 비교하지만 나는 이를 엔론에 견주겠다”며 “단순한 재정적 오류가 아니라 사기의 냄새가 난다. 엄청난 부의 폭발이 일어났는데 아무도 그 원인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정체 불명의 해킹마저 발생해 혼란을 더하고 있다. FTX가 파산 신청 이후 해킹이 발생했다고 공개한 가운데 블록체인 분석업체 앨립틱에 따르면 사라진 암호화폐 가치는 4억7,700만 달러 규모로, 채권자들의 보상 몫은 그만큼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암호화폐거래소 크라켄 측은 “해킹과 관련된 계정 소유자의 신원을 알고 있다”며 “사법 당국의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이후 뱅크먼프리드 전 CEO가 해킹과 관련해 경찰과 면담했다고 보도했다.
FTX의 업계 위상과 자산 규모, 채권자 수 등을 고려할 때 막대한 후폭풍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기관들의 피해는 속속 구체화되고 있다.
WSJ에 따르면 암호화폐 투자기업 멀티코인캐피털은 약 9,000억 달러가 FTX에 묶였으며, 또 다른 디지털자산 투자사 제네시스는 사업 자금 1억7,500만 달러가 FTX 계좌에서 동결했다. 이미 파산한 크립토 대출 기관 셀시우스네트워크는 계열사인 알라메다리서치에 1,300만 달러를 대출한 상태다. 소프트뱅크는 약 1억 달러의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정부 기관 등에 금융사기 컨설팅 등을 제공하는 인테그라FEC의 CEO이자 텍사스대 교수인 존 그리핀은 “이 업계는 암호화폐를 담보로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FTX 거래소와 연결된 모든 자산들이 하락할 수 있다”며 “서로 신뢰가 깨지면 현금 조달을 위해 담보를 팔아 치울 수밖에 없고 이는 다른 거래소의 자산과 현금 보유량,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것은 암호화폐 시장 내 금융위기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암호화폐 가격은 이미 치명상을 입었다. 7일 1조400억 달러 수준이던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12일 8,400억 달러 대로 5일 만에 2,000억 달러가 증발했다. 분산 금융(DeFi) 거래소 디와이디엑스의 CEO 안토니오 줄리아노는 “단기에서 중기적으로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월가에서는 FTX발 시장 혼란이 은행 등 금융 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도 점검하고 있다. 찰스슈와브의 랜디 프레드릭은 “암호화폐 업계의 정보가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영향은) 추정할 수밖에 없다”며 “전통 금융은 암호화폐에 대해 약 3~6% 정도의 익스포저를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