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포스트 모더니즘 세대(Postmodernism Generation)>의 자화상은 자신감을 상실한 허무에 시달리는 연약한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하루 하루를 무의미하고 맹목적인 삶으로 연명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바로 이러한 세태의 모습은 이 천년 전에 세상에 <인류구원>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품고 세상에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에도 인생의 자화상은 변함없이 동일한 세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인생을 향하여 예수님이 베푸신 가장 큰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긍휼과 은혜(Mercy and Grace)”입니다. 긍휼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가장 진솔하고 정직한 <진정성>을 갖춘 참 제자가 갖추어야 할 필수덕목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지상 설교 가운데 가장 하이라이트는 마태복음 5장 1절로 12절에 나오는 <산상설교의 백미인 팔복 설교>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다섯 번째의 복으로<긍휼(Mercy)>의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이 있나니”란 말씀은 첫번째 복에서 마지막인 여덟번째 복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첨언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복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속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축하(Congratulation)”와 “권면(Recommendation)”의 의미입니다. “긍휼히 여기라. 이것은 당연히 축하할 일이다. 긍휼히 여기라. 이것은 권장할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는 당연히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입성을 서론과 결론부분에서 동일하게 팔복 설교에서 강조하시면서 본론의 절정에서 왜 하필이면 긍휼을 강조하셨을까? 하는 <마음의 물음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긍휼은 하나님의 최고 절정의 마음>이라는 것을 은밀하게 말씀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긍휼” 메시지의 하이라이트는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인류구원을 위해 과감하게 천국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성육신하신 구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단순히 “썩을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에 목적을 두신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인간의 <한계와 연약성>을 의미하는 몸을 입고 오셔서 사람의 <한계와 연약성>의 대명사인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롬 3:23).
히브리서 11: 15, “하나님의 아들 예수,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죄 있는 사람이 받을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죄 없으신 하나님이 죄인된 인류를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긍휼을 예수님의 제자된 모든 크리스천에게 <축하와 권면>의 뜻으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세대는 <잃어버린 자화상>을 회복하기 위해 가장 긴급하고 시급한 최고의 급선무는 <긍휼>의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메마른 세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 문제조차도 관심없이 살아가는 불쌍한 처지에서 그 죄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해결책은 <긍휼의 구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맹목적인 삶, 허무한 인생의 허탈감에서 <새 에너지>로 생동감 넘치는 삶으로 전환하려면, <긍휼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회복할 때, 그 다음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Grace)>입니다. 은혜는 우리의 행위, 우리의 자격이 선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무상의 선물>입니다. 그저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혜는 곧 영혼 구원의 통로입니다. 에베소서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긍휼>과 <은혜>는 지금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브리서 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