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속에서도 실질 구매력 상대적으로 높아져
달러화의 역대급 초강세로 미국의 소비자들이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강달러 지속 현상이 반드시 미국에 좋은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달러 강세가 다른 나라들에서 초래하는 부정적인 여파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강달러 덕분에 미국 소비자들의 상대적인 구매력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지난 5일 보도했다.
지난 7월 국제결제은행(BIS)이 집계하는 달러화 실질실효환율이 지난 2002년 종전 최고 기록을 경신한 것이 좋은 예다. 주요 무역 상대국들에 비해 미국의 실질 구매력이 더욱 올라갔다는 의미다.
WSJ 달러지수는 올해 들어 13% 가까이 올랐고, 유로화와 달러화의 등가를 의미하는 패리티(1유로=1달러)도 20여 년만에 처음으로 깨졌다. 영국 파운드화 대비 달러화 가치는 1985년 이후 가장 높아졌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자산 가운데 달러화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낸 것은 천연가스가 유일하다.
이러한 달러 강세로 미국의 수입품 가격이 낮아지는 반면, 다른 나라 소비자들은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이는 미국의 수출업자들에게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미국 이외의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
스탠다드차타드의 외화리서치 글로벌 부문장인 스티브 잉글랜더는 WSJ에 “나머지 세계는 높은 수입 가격과 긴축적인 유동성 여건이라는 이중 타격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길어지는 강달러 현상이 조만간 진정될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은 별로 없다. 미국의 노동시장이 여전히 탄탄하다는 지표를 고려하면 강달러의 최대 원인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큰 폭 금리인상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수의 전문가는 연준이 내년에도 한참 동안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다만 월가의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도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달러 가치가 정점에 다다랐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에서도 0.75%포인트의 금리인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채권운용사 핌코의 전직 최고경영자(CEO)인 모하메드 엘-에리언은 이날 블룸버그뉴스 칼럼에서 달러화 강세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며 미국에도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강달러가 당장 미국의 높은 인플레이션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나머지 세계에 강달러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미국도 우려해야 한다는 것이 엘-에리언의 지적이다.
달러 가치 상승이 더 길어지고 급격해질 경우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과 개발도상국 채무 리스크가 커질 수 있고, 경제가 취약한 국가의 정치적 혼란과 지정학적 갈등도 심화할 수 있다고 엘-에리언은 전했다. 그는 “이 모든 일이 미국산 수출품에 대한 수요 약화, 공급망 불확실성 가중, 재정 손실, 국가안보 우려 증가 등을 통해 미국 경제에 조만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강달러가) 글로벌 경제에 주는 피해의 정도와 범위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에 대해 동맹들과의 협력을 주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