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 새 한국전쟁 조형물…미군·카투사 전사자 이름 나란히 새겨
2천여명 참석해 희생 추모하며 한미동맹 평가…"강력한 동맹 토대"
한미 양국의 국가가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국전에서 희생된 미군과 카투사를 기리기 위한 130m 길이의 '추모의 벽'이 27일 워싱턴 DC 내셔널 몰에 우뚝 섰다.
'기억의 못'을 둘러싼 100개의 화강암 판에 빼곡하게 적힌 전사자 4만3천808명의 이름이 한여름 강한 햇살을 받으면서 마침내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추모의 벽 앞에서는 이날 오전 한국전 참전 용사와 유가족, 한미 양국 정부와 의회 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의 벽' 헌정식이 열렸다.
'자유(freedom)는 공짜(free)가 아니다'라는 교훈을 희생으로 보여준 한국전 전사자들의 이름이 한명 한명 기억되기까지 1995년 한국전 참전 기념 공원이 조성되고도 30년 가까이가 걸린 만큼 이날 행사는 엄숙하면서도 감동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사전 행사와 본 행사 순으로 진행된 헌정식은 미국 군악대의 '아리랑'으로 사실상 시작됐다.
재미 교포 군악대원이 우렁차면서도 애절한 목소리로 부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가 한국전 참전기념 공원에 울려 퍼지자 추모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었다.
이에 앞서 사전행사 사회를 맡은 조너선 일리어스 아나운서는 "학교에서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으로 배웠을 때 도대체 어떻게 잊을 수 있느냐고 스스로 반문했다"면서 참석한 참전용사와 유가족, 군인들에게 차례로 일어서달라고 말하면서 박수를 부탁하기도 했다.
이어 조태용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전 참전 기념 공원에 이어 추모의 벽이 완공된 것을 축하한 뒤 한국전에 참전한 22개국을 벨기에부터 알파벳 순으로 하나씩 언급하자 그때마다 박수가 쏟아졌다. 특히 한국에 뒤이어 가장 마지막으로 미국을 낭독하자 박수 소리가 커지면서 환호성도 들렸다.
본 행사를 위해 미국 성조기와 한국 태극기가 나란히 입장하자 참석자들은 전원 기립해서 양국 국기에 예의를 표했다.
이어 군악대가 애국가와 미국 국가를 순서대로 연주되면서 한국전쟁에서 혈맹으로 시작된 한미동맹의 정신을 상기시켰다.
행사장 연단의 메시지도 추모 및 희생에 대한 기억과 함께 한미 동맹에 맞춰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대독한 메시지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은 여러분들의 희생과 헌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며 "여러분의 희생 위에 우뚝 세워진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보훈처장은 메시지 낭독 뒤에 한국말과 영어로 "같이 갑시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부통령의 남편인 '세컨드젠틀맨' 더그 엠호프도 기념사에서 "오늘 우리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나란히 싸운 미국인과 한국인의 희생을 추모하고 있는데 이는 대한민국 번영과 깰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한미 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추모의 벽에는 미군과 함께 싸운 카투사 전사자 7천174명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미국 내 참전 기념시설 가운데 미군이 아닌 전사자의 이름이 새겨진 최초 사례다.
카투사와 함께 한국전에서 싸운 참전용사 케이츠 브레트노는 이번 사업을 진행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추모재단이 중계한 헌정식 온라인 생방송에서 "그들은 나를 지원했으며 나는 그들을 지원했다"면서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행사를 마친 뒤 세컨드젠틀맨 엠호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이종섭 국방부 장관, 박민식 보훈처장 등은 추모의 벽 앞으로 이동해서 이번 사업을 주관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추모재단 회장인 존 틸럴리 전 주한 미군 사령관으로부터 이번 사업에 대한 설명을 청취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이들은 본 행사 전에도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헌화하고 묵념했다.
이날 행사는 30도 안팎의 무덥고 습한 날씨에 진행됐으나 참석자들은 시작 1시간여 전부터 행사장에 모여들기 시작해 사전에 마련된 1천500개의 의자를 대부분 채웠다. 더위에 나무 그늘에 있었던 참석자 등을 고려하면 족히 2천여 명은 됐다.
한미 양국에서는 정부 측 인사 외에도 의회 인사들도 참석했으며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삼성, 현대차 등 기업 관계자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행사장 진행요원들은 행사 시작 전부터 참석자들에게 생수와 아이스팩, 부채 등을 건넸으며 무더위에도 참석자들은 대부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행사 전에 한국전쟁 기념공원 인근에서 만난 한 시민은 '추모의 벽' 준공과 관련, "이 부근서 자주 조깅을 하는데 이제 이름이 새겨진 만큼 그들의 희생이 잊히지 않고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