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달러 이상 계좌 전년비 12억달러 ↓
미국 경제에 닥친 경기 침체 시그널이 한인 은행 고액 예금 현황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인 은행들의 전체 예금고는 증가했는데, 10만 달러 이상 고액 예금계좌의 총액은 1년 전에 비해 상당히 감소한 것이다.
이는 인플레이션 여파에 당장 생활자금이 필요한 한인들이 예금을 현금화한 결과로 분석된다. 여기에 달러 강세로 한국에서 한인들의 계좌로 들어오는 자산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20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기준 남가주에 본점을 둔 뱅크오브호프, 한미은행, PCB, CBB, 오픈뱅크, US메트로은행 등 6개 한인 은행에 예치된 10만 달러 이상 고액 예금계좌 규모는 총 40억9,999만달러 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FDIC에 제출된 올해 1분기 콜 리포트를 분석한 결과로 지난해 같은 기간(53억2,441만달러)과 비교해 무려 23% 감소한 수치다. 감소폭은 25만 달러 이상인 예금에서 6억7,432만 달러가 줄어들었고, 10만~25만 달러 사이 예금에서는 5억5,950만 달러가 줄어들었다.
반면 한인 은행들의 올해 1분기 전체 예금고는 총 263억여 달러로, 지난해 1분기의 248억여 달러에 비해 6.3%가 늘어난 상황이다. 전체 예금고는 증가했는데 10만 달러 이상 고액 계좌에 든 액수는 줄어든 것이다.
한인 은행들의 고액 예금계좌 총액이 감소한 것은 경기 침체 시그널로 분석된다. 다수 한인들은 고객 특성상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해 예금을 선호하는데 이를 해지하거나 연장하지 않은 것은 당장 필요한 현금을 충당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올해 들어 심각한 인플레이션 탓에 생활비가 늘어나자 예금에 손을 댄 것이다. 여기에 더해 기준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한인은행들의 예금 금리가 12개월 만기 양도성 예금증서(CD) 기준 0.5%가 안돼 낮은 수준인 것도 예금 상품 회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선두 은행 뱅크오브호프의 고액 예금계좌 감소가 가장 두드러졌다. 호프의 10만달러 이상 고액 예금은 올해 1분기 19억313만 달러로 전년 동기(28억6,817만 달러) 대비 33.6% 줄었다.
남가주 6개 은행 고액 예금고에서 호프가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50%에 달하기 때문에 전체 총액 감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미은행도 올해 1분기 7억8,645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0억7,715만달러)과 비교해 27% 줄어들었다. 다른 한인 은행들도 마찬가지로 모두 전년 대비 고액 예금계좌 총액은 줄어들었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안전자산인 달러화가 강세를 보인 것도 한인은행 고액 예금계좌 감소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다수 한인들은 한국에 갖고 있는 자산을 처분해 한인 은행 계좌에 송금하는데 올해 연초부터 강달러가 나타나자 손해를 감수하고 돈을 보낼 요인이 줄어든 것이다. 원·달러 환율은 연초 이후 현재까지 강세가 이어져 20일 기준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292.4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7월 이후 최고치다.
한인 은행들의 고액 예금계좌 감소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분석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조사에서 1년 내 경기침체가 나타날 가능성을 예상한 경제학자들의 비중이 44%에 달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등 경제 비상 우려가 큰데다 연방준비제도(FRB·연준) 기준 금리 인상 지속에 강달러 현상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경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