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유럽 제재로 부품 공급 차질 핑계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즈프롬이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해저 가스관 ‘노르트스트림’의 가스 공급량을 기존의 3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줄였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서방을 상대로 ‘에너지 무기’를 꺼내 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15일(현지시간)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가즈프롬은 16일 오전 1시 30분을 기해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을 통한 하루 공급량을 기존 1억㎥에서 6,700만㎥로 33% 줄인다. 가즈프롬은 전날에도 독일에 공급하는 가스용량을 1억6,700㎥에서 1억㎥로 40% 삭감했다. 이틀 사이에 가스 공급량의 60% 정도를 줄인 것이다.
가즈프롬은 감축 원인을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탓으로 돌리고 있다. 노르트스트림에서 사용하는 터빈이 고장 나 캐나다로 보내 수리했는데 제재로 인해 현지에 묶여 있다는 것. 터빈 반환이 지연되면 노르트스트림을 통한 가스 공급량을 계속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게 가즈프롬 입장이다.
가즈프롬은 이날 이탈리아 최대 에너지기업 에니 측에도 천연가스 공급량을 15% 줄이겠다고 일방 통보했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모스크바 서쪽(유럽)에 있는 자들은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고 있다”며 “(서방이 우리를 고립시킨 게 아니라) 서방이 우리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킨 것”이라며 원색적 비난을 더했다.
서방은 러시아 측 처사가 에너지를 정치적으로 악용한 “협박(blackmail)”이라고 맞서고 있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러시아의 공급 축소 근거는 핑계에 불과하다”며 “불안을 조장하고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치적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4일 가스 공급 계약을 맺기 위해 이스라엘을 방문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보복으로 폴란드, 불가리아, 핀란드, 네덜란드, 덴마크에 대한 가스 공급을 의도적으로 차단했다”며 “그러나 크렘린의 행동은 러시아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우리의 결의를 강화했을 뿐”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EU는 지난해 천연가스 소비량의 약 40%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했다.
한편 미 CNN비즈니스에 따르면, 러시아발 악재로 EU 내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이번 주에만 42% 급등했다. EU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려고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늘리고 있지만 여의찮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