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분유 공급 제한에 아기 있는 가족 고통
14일 버지니아주 패어팩스카운티 S슈퍼마켓. 아기용품을 파는 진열대 중 유독 비어 있는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아기용 기저귀, 물티슈, 의약품 등은 물건이 빌 때마다 직원들이 채워 넣었지만 분유를 진열했던 곳에는 이빨 빠진 것처럼 진열대가 텅 비어 있었다. 일반 분유는 제조사별로 1, 2개 정도는 남아 있었지만 알러지 민감성 아기용 분유, 철분이 함유되고 글루텐은 없는 고급분유 등 특수 분유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직원 케이트는 “아기 엄마들이 언제 분유가 들어오느냐고 묻지만 우리는 알 수 없다는 대답만 한다”고 했다.
타깃을 비롯한 미국 주요 유통업체와 약국 체인 CVS, 월그린 역시 고객 1명이 구매할 수 있는 분유 수량을 제한할 정도다.
미국의 분유대란이 점입가경이다. 공급망 혼란과 주요 분유 제조사 리콜 사태로 분유 공급이 줄어들며 아기가 있는 미국 가정의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분유업체 애보트 리콜 사태 후 저소득층에 무료로 제공하던 분유 공급이 끊기고 여론이 들끓으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도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3월 이후 이어진 미국 내 분유 부족 사태는 두 달 가까이 해결 기미가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제조와 물류망에 구멍이 생기면서 원활한 분유 공급에도 문제가 생겼다. 여기에 미국 최대 분유업체 애보트 미시간주 공장에서 박테리아균이 발견된 뒤 공장 가동이 지난 2월부터 중단되면서 공급 차질이 심화했다. 미국 내 일부 지역 분유 품절률은 50%를 넘은 상태다.
당황한 부모들은 온라인으로 조제 분유를 교환하고 구입하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영양소가 포함된 분유를 가정에서 제조할 경우 세균 오염 가능성 등 또 다른 문제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산모의 남는 모유 공급을 연결해주는 ‘우유 은행’도 대안으로 떠오르며 문의가 폭증하고 있다고 미 AP통신이 전했다. 매사추세츠주 뉴턴에 있는 한 우유 은행의 경우 모유 기부 전화가 한 달에 30~50통 정도 걸려오다 분유 대란이 이슈가 된 뒤인 지난 12일 하루에만 35건의 기부 문의 전화가 왔다고 한다.
애보트는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 후 2주 내에 제조 공장 가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AP는 생산이 시작된다 해도 진열대에서 판매되기까지는 6~8주가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앞으로도 2개월 넘게 분유 대란이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풍요의 나라’ 미국은 이제 예전 이야기가 되는 걸까. 미국이 아기 있는 가정을 위해 가장 중요한, 필수 물품인 분유 하나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나라가 되고 있다는 한탄이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