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솔린 32%·식료품비 8.8% 올라… 서민 가계 위협
12일 오후 LA 한인타운 내 한 한인 마켓을 방문한 한인 박모씨는 냉동 생선팩을 들어 보고 다시 내려 놓았다. 그는 가격표와 냉동 생선 팩의 내용물을 번갈아 유심히 보았지만 쉽게 카트로 옮겨 놓지 못했다. 박씨는 “가족들이 좋아하는 생선이긴 한데 가격이 너무 올라 선뜻 사는 게 고민된다”며 “다른 해산물도 보았지만 모두 가격이 오르다 보니 살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미국의 물가가 그야말로 미쳤다. 개솔린 가격에서부터 자동차에 이어 식료품비에 외식비가지 온통 인상 일색일 정도로 물가가 치솟고 있다. ‘내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한인들의 자조 섞인 말에서 인플레이션 압박에 따른 가계 부담이 심화되고 있음이 감지되고 있다.
연방 노동부는 3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8.5% 올랐다고 12일 밝혔다. 1981년 12월 8.9% 오른 이후 지난달이 41년만에 가장 큰 물가 상승폭이다.
특히 개솔린 가격의 상승폭이 컸다. 전월 대비 상승분의 절반이 개솔린 가격이 차지해 전월에 비해 11%, 1년 전보다 32%나 급등했다. 식료품 가격도 1년 전에 비해 8.8%나 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유와 곡류 등을 수출하는 두 나라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 개솔린과 식료품 가격이 급등세를 이어가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물가는 지난해 11월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올해 들어서면서 연속해 사상 최고치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는 상황이다.
인플레이션으로 물가상승 압박이 지속되면서 가계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 한인들의 하소연 같은 독백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가족들의 밥상을 걱정하는 한 한인 주부는 “찬거리를 사려고 마켓에 나와 보지만 100달러 가지고 살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다”며 “얼마를 더 써야 푸짐한 밥상을 마련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은 식당의 음식 가격이 최근 2~3개월 사이에 크게 오르면서 점심 먹는 것이 이제 부담이 되고 있다고 했다. 한인타운에 직장을 둔 한인 김모씨는 “월급이 올라도 물가가 더 크게 오르다 보니 한정된 용돈으로 점심 먹는 게 겁이 난다”며 “함께 식사하는 데 드는 점심값이 부담이 될 것 같아 최근엔 혼자 점심 먹는 일이 많아졌다”고 씁쓸해했다.
외식비도 크게 오르면서 예전 같으면 가족 단위로 식사 모임도 자제하는 분위기다. 황모씨는 “4~5명의 가족들과 고깃집에 가면 이전에는 200달러 정도면 푸짐하게 먹고 왔지만 지금은 300~400달러가 들어 부담된다”며 “가족과 외식을 줄이고 고기를 사다가 집에서 구워 먹는 것으로 방법을 바꿨다”고 말했다.
한인 식당 업주들도 물가 상승의 피해자라며 볼멘 소리를 내고 있다.
한식 BBQ 식당을 운영하는 업주 이모씨는 “해운 물류 비용 상승하면서 각종 식자재 가격이 2~3배 가량 올라 음식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며 “부활절 이후 고기 가격이 오를 것이란 소식에 음식 가격을 또 올려야 하는 상황이 두렵다”며 하소연했다.
미국 내 한인 유학생들도 미국 물가 급등에 또 다른 희생자들이다. 미국발 인플레이션 소식에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서 환율 부담과 물가 부담의 이중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기준으로 원·달러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3.1원 오른 달러당 1,236.2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달 15일의 1,242.8원 이후 1달 만에 최고치다.
한인 유학생 김모씨는 “환율 상승으로 부모님의 송금 부담이 늘어 송금액을 최소화하고 있다”며 “미국 물가가 미친듯이 오르고 있어 빡빡한 유학 자금으로 LA에서 버텨내는 게 쉽지는 않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