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서는 정숙성 럭셔리카 연상시켜
테슬라의 시대가 저물지도 모른다. 기아 EV6를 장기간 시승하면서 느낀 소감이다. 아무리 좋은 성능을 가진 자동차라도 며칠 타보면 단점을 찾을 수 있기 마련인데 EV6는 반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장점이 보이는 차였다.
처음 만족한 부분은 멋스러운 외관 디자인이었다. EV6의 외관은 스포티한 느낌으로 유려하다. 형제차라고 할 수 있는 현대 ‘아이오닉5’는 미래적 디자인으로 호불호가 갈린 탓에 투박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많았다. 하지만 EV6는 디자인 측면에서 호평이 많다. 전면은 세단 같지만 측면은 SUV 윤곽이 나타나면서 앞쪽 모터룸 덮개와 뒤쪽 적재함 상단을 직선으로 마감해 겉모습이 크지만 둔하지 않아 보인다. 특히 사이드미러 끝을 뾰족하게 만든 게 날카로운 인상을 줬다. 기아가 EV6를 기점으로 전기차에 반영한 새로운 디자인 철학인 ‘오퍼짓 유나이티드’(상반된 개념의 창의적인 융합)가 반영돼 매끄러운 외관이 나타난 것이다.
며칠 간 시승하면서는 외관보다 실내 공간이 넓다는 점이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해치백 스타일이 주는 공간의 장점이 컸다. 넉넉한 휠베이스를 바탕으로 1열과 2열의 넓이에서 부족함이 없었다. 2열 시트를 접으면 최대 1,300ℓ의 적재공간을 확보할 수도 있다. 골프백을 여러개 실고 라운딩을 갈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도심 외곽에서 차박을 즐기기에도 충분한 사이즈다. 인테리어 측면에서는 운전자 친화성이 돋보였다.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이 곡선으로 운전자를 향하고 있어 편리하게 조작이 가능했다.
며칠 동안 시승 중 도심 주행을 했을 때는 정숙성이 돋보였다. 전기차답게 소음이 거의 없었는데 제네시스와 같은 고급 자동차를 타는 느낌마저 들었다. 차량 하부에 배터리팩이 배치된 ‘E-GMP’ 플랫폼의 특성상 무게 중심이 낮아 안정감이 높고 운전이 편안한 느낌도 들었다. 승차감은 전반적으로 좋았지만 과속방지턱이나 요철 구간에서는 다소 충격이 느껴지기도 했다. EV6가 주는 드라이빙 감각은 SUV보다는 세단에 가깝다. 시트로 전해지는 차체의 느낌은 다소 단단한 편이다.
주말에 시내를 빠져나와 프리웨이에서 차를 몰 때는 스포츠 세단을 타는 것과 같은 만족감을 느꼈다. 페달을 밟으면 망설임 없이 속도계 숫자가 올라간다. 기자가 시승한 차는 최고 사양의 GT-Line 모델로 전륜구동 모델로 320마력 전기모터의 힘으로 정지상태에서 시속 60마일까지 가속하는 데 단 5.1초면 충분하다. 최고출력 320마력의 힘이 느껴지는 것은 물론 속도가 끊임없이 올라감에도 안정감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고속 주행 중에는 차선변경과 선회에서 충격 흡수와 제동력이 우수했다. 특히 차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커브에서 차체 흔들림이 심할거라 생각했는데 좌우 롤링 없이 추월 또는 커브 길에서 차체를 안정적으로 잡아줬다. 도로환경에 따라 단단하게 조여지는 서스펜션은 EV가 그동안 시승해본 다른 전기차와 비교했을 때 차별화된 주행성을 가진 잘 달리는 전기차임을 확인시켜 줬다.
시승 기간 또 다른 놀라웠던 점은 충전의 효율성이었다. 18분 만에 배터리 용량을 10%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는 초급속 충전 시스템 덕분에 환경이 갖춰진 상황이라면 부담 없이 차를 몰고 다닐 수 있었다. 또한 도시 외곽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는 V2L 기능이 큰 도움이 됐다. 랩탑은 물론이고 각종 레크리에이션 장비를 연결해서 사용하면 돼 매우 편리했다. V2L 기능에 익숙해진 운전자라면 나중에 EV6가 아닌 다른 차를 모는게 매우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번에 EV6를 장기간 시승하면서 기아의 중장기 전기차 전략이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테슬라를 넘어서는 시대가 언젠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충분히 들었다.
<이경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