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간 880억 달러 투자” 인텔, 유럽 막대한 실탄투입
세계 반도체 산업 패권을 둘러싼 ‘쩐의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진원지는 왕년의 ‘반도체 제왕으로, 막대한 실탄을 장전하고 참전한 미국의 인텔이다. 지난해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이 최근 미국에 이어 유럽 등에 천문학적인 투자 계획 발표와 함께 공격적인 행보로 일관하면서다.
경쟁사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 수급난에 인텔을 중심으로 한 서구권 반도체 동맹이 견고해지면서 업계 선두주자인 아시아의 TSMC와 삼성전자도 맞대응에 나서면서 지각변동까지 예고되고 있다.
■유럽 전역에 ’반도체‘ 기지 건설
인텔은 지난 15일 온라인 기자회견을 통해 유럽 반도체 투자 세부 계획을 발표하고, 향후 10년간 유럽에 반도체 생산과 연구·개발을 위해 800억 유로(약 88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한 후, 친정인 미국 애리조나와 오하이오에 앞서 공개한 400억 달러 규모의 첨단 반도체 및 파운드리 공장 건설 계획까지 포함하면 1년 사이에 무려 약 1,30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시설투자에 쏟아붓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인텔은 우선 유럽 전역에 반도체 밸류체인 전반을 포괄할 전진기지 구축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마그데부르크엔 170억 유로(약 187억 달러)를 들여 반도체 생산공장(팹)을 신설, 2027년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또 아일랜드 레익슬립 공장엔 120억 유로(약 132억 달러)을 투자해 기존 시설을 2배로 확장한다. 프랑스엔 연구·개발(R&D) 허브를, 이탈리아엔 포장 및 조립 등 후공정 시설도 건설한다. 폴란드에선 클라우드 컴퓨팅 등 솔루션 개발에 주력하는 연구소를 50% 확장하고, 스페인에선 바르셀로나 슈퍼컴퓨팅센터와 협력해 공동연구소까지 설립할 예정이다.
세계적 반도체 수급난에 인텔과 미국·유럽의 ’동맹‘ 견고해진다 인텔과 유럽의 공조는 반도체 왕국 재건에 나선 인텔과 아시아에 대한 반도체 의존도를 줄이려는 유럽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나온 결과로 풀이된다. 반도체 시장의 ’절대강자‘였던 인텔은 최근 컴퓨터(PC)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선 AMD에 추격을 허용하고, 생산과 매출에선 TSMC와 삼성전자에 밀리면서 자존심을 구겼다.
반도체 공급난에 유럽연합(EU)도 급하긴 마찬가지다. 지난달 EU가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총 생산량의 9%에 불과한 유럽 내 반도체 생산량을 2030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의 반도체법을 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도체 부문에 공공과 민간에선 이미 430억 유로(약 474억 달러) 투자 계획도 내비쳤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반도체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지만 공급은 여전히 모자라는 데다, 전 세계 반도체의 80%가 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며 “전 유럽에 걸친 투자를 통해 글로벌 반도체 수급 불균형을 해결하고 공급망의 회복력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TSMC·삼성, 천문학적 투자 예고
아시아를 상대로 한 인텔과 미국, 유럽의 삼각동맹이 견고해지면서 TSMC와 삼성전자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진 상태다. 인텔의 파상공세가 이어진 가운데 반도체 공급망 자생력 갖추기에 나선 미국과 유럽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도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반도체 산업에 520억 달러의 정부 예산을 투자하는 법안 통과에 올인하고 있다. 유럽은 반도체 공장 유치를 위해 시설투자 기업에 주어질 40% 세금 공제 제도도 추진 중이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이에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TSMC는 올해 전년 대비 40% 늘어난 420억 달러를 설비투자에 투입할 계획이다.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 기업인 삼성전자도 2030년까지 170조 원(약 1,400억 달러)을 투자해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와의 격차를 줄여 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