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붙은 러-서방 치킨게임] 푸틴 핵 억지력 부대 활동 지시
벨라루스에 핵무기 배치 가능성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이 국제은행 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러시아를 퇴출시키며 압박 수위를 높이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결국 핵 위협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미국은 이를 규탄하며 러시아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석유·가스 등 에너지 분야가 다음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유럽연합(EU)도 금융·항공 제재로 가세하는 등 러시아와 서방의 ‘벼랑 끝’ 치킨게임이 날로 가속화하는 가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개전 후 처음으로 협상장에 마주 앉았다.
28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이날 우크라이나 북부 국경에서 가까운 벨라루스 고멜주(州)에서 만나 회담했다. 러시아 대표단은 푸틴 대통령의 보좌관인 블라디미르 메딘스키가 이끌었고 우크라이나 측에서는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고문, 집권당 ‘국민의 종’ 대표 다비드 아라하먀 등이 참석했다.
회담에 앞서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방안을 중점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반면 우크라이나는 주요 의제가 러시아군 즉각 철수 문제가 될 것이라고 해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전날 푸틴 대통령은 TV 연설에서 “핵 억지력 부대의 특별 전투 임무 돌입을 국방부 장관과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핵 억지력 부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 폭격기, 핵 잠수함 등 러시아 핵무기를 관장하는 부대를 말한다. 가중되는 서방의 경제제재에 대한 보복 조치로 핵 옵션을 꺼내 들 가능성을 내비친 셈이다.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과 국경을 맞댄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배치해 서방을 위협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러시아의 최우방인 벨라루스는 이날 자국에 핵무기 배치를 허용하는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65.16%의 찬성으로 통과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벨라루스는 소련 해체 후 러시아에 반납한 핵무기를 재배치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에 미군 수뇌부는 즉각 대응 방안 논의에 돌입했다고 CNN은 전했다.
백악관은 푸틴 대통령이 존재하지도 않는 위협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비난하며 에너지 분야에서 추가 조치 가능성을 언급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ABC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산 석유·가스 등의 금수 조치 등과 관련해 “모든 것이 테이블 위에 올라 있다”고 밝혔다. 전 세계 원유의 12%, 천연가스의 17%를 생산하는 러시아의 에너지 분야에 제재가 가해질 경우 미국 등 서방국가들도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백악관이 ‘마지막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EU 역시 푸틴의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고 독자 제재를 강화하며 러시아 경제에 대한 포위망을 좁히고 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날 “러시아 소유·등록 또는 러시아가 통제하는 모든 항공기 금지를 제안할 것”이라며 “이들 항공기는 더는 EU 영토에서 이착륙하거나 비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EU는 이날 우크라이나에 총 5억 유로(약 6700억 원) 규모의 군사 지원을 발표했다. 이 중 4억 5000만 유로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무기 지원에 사용하고 추가로 5000만 유로는 의료 물자 등 비살상 목적에 쓸 예정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유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지지한다”고 공개 선언하기도 했다.
유엔 역시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으로 버티고 있는 안전보장이사회를 우회한 긴급 특별 총회를 개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유엔 총회 결의는 안보리 결의와 달리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결의안이 채택될 경우 국제사회 전체가 러시아 침공의 부당성을 규탄하게 돼 상징성이 적지 않다.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들도 온라인 긴급회의를 열어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경고했다.
<워싱턴=윤홍우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