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가는 임금에 날아가는 물가로 고통
한인타운에 거주하며 직장에 나가는 한인 이모씨는 중고차를 사기 위해 여기저기 다녀 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매물도 그리 많지 않은데다 가격마저 크게 오른데 반해 급여는 크게 오르지 않아 선뜻 구매를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중고차 가격이 오르다 보니 받는 급여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자동차 구입을 망설이고 있다”고 했다.
물가가 임금보다 상승폭이 더 가파르게 오르는 소위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 현상이 나타나면서 소비 심리를 위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스크루플레이션은 ‘쥐어짜다’라는 뜻의 ‘스크루’(screw)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쳐 만든 용어로, 임금보다 물가가 더 빨리 올라 중산층의 실질 소득이 줄어들면서 삶이 팍팍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경제적 타격을 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 경제에 스크루플레이션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지난해 12월 임금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31.31달러로 전년의 29.91달러보다 4.7% 상승에 그친 반면에 같은 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에 비해 7.0%나 오르면서 임금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깎인 상태다.
스크루플레이션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곳이 자동차 판매 시장이다. 지난해 12월 신차와 중고차 가격은 각각 11.8%와 37.3%나 올랐다. 특히 중고차 가격 상승이 컸다.
자동차 시장조사기관 콕스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현재 미국 내 중고차 평균 가격은 2만7,569달러로 전년의 2만1,708달러보다 6,000달러 가량 상승했다. 이에 반해 같은 달 임금 노동자의 주당 평균 임금은 1,077.09달러다. 주당 평균 임금으로 중고차를 사기 위해서는 26주를 일을 해야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이는 전년 21주에 비해 5주가 더 늘어난 것이다.
앤더슨 경제 그룹은 “중고차를 구입하기 위해 미국의 임금 노동자들은 전에 비해 5주 더 일을 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 것은 임금이 물가 상승을 따라잡지 못한 상황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2012년 이후 물가 상승률이 낮게 유지되면서 사라졌던 스크루플레이션이 10년 만에 다시 등장하면서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소비 심리를 위축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
올해 1월 미시간대학 소비자심리지수는 68.8로 10년 만에 두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소비자의 절반 가량은 물가 상승이 임금 상승보다 더 커 실질적으로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 12월 소매 판매가 전월보다 1.9%나 감소해 10개월 사이 최대 낙폭을 보이면서 스크루플레이션의 공포가 올해도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의 근거가 되고 있다.
한인들 역시 실질 임금이 줄어든 탓에 외식을 비롯한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자제하면서 고물가 시대에 금리까지 올라 삶이 더 어려워질 것을 대비해 소비를 줄이는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