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복수국적 2세
출생·이혼신고 등
한국내 신청기록 없어
국적이탈 사실상 막혀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한인 여성 최모씨는 미국에서 태어나 줄곧 미국에서 살았다. 대학생인 최씨는 올해 한국의 한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갈 예정이었다. 교환학생 비자를 받는 과정에서 영사관 측은 최씨가 선천적 복수국적이기 때문에 한국 여권을 가지고 귀국해야 한다고 알렸고, 한국에 출생신고 조차 되지 않은 최씨는 한국 여권을 만들 수 없어 끝내 교환학생을 포기해야 했다.
자신도 몰랐던 복수국적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최씨는 ‘국적이탈’을 하고자 했지만 그러나 부모님의 이혼 사실이 발목을 잡았다. 한국에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최씨가 국적이탈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 이혼한 최씨의 부모님이 한국에 혼인신고를 한 후 최씨의 출생신고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결혼해 한국에 별도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던 최씨의 부모님은 딸의 국적이탈을 위해서 불필요한 혼인신고를 해야하는데, 이혼 후 현재 다른 배우자와 재혼한 상황에서 전 배우자와 혼인신고를 할 수는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최씨는 LA 총영사관에 부모님의 혼인신고 절차 없이 국적이탈이 가능한지에 대해 문의했지만 영사관 측에서는 ‘양친의 혼인신고서와 인적사항을 제출하지 않고서 국적이탈은 불가능하다’는 이메일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한인 2세 여성들도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국회의 국적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특히 이혼가정이나 한부모 가정의 경우 국적이탈을 위한 제출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한다. 국적이탈 시 부모님의 여권, 혼인 신고서 등이 모두 필요한데, 이혼가정 및 한부모 가정은 양친의 신원 자료를 준비하는 일이 불가능한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최씨의 어머니는 “이혼 가정의 자녀는 국적이탈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비판하며 “제발 국적법 개정이 하루 빨리 이뤄져 억울한 사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2010년 이전만 해도 여성의 경우 22세에 국적선택을 안 할 경우 한국 국적을 자동 상실했었다. 하지만 2010년 개정법에 의해 국적선택 불이행 시 국적자동상실제도가 폐지돼 1988년5월5일 생을 포함한 그 이후 출생자들은 국적이탈을 하지 않는 한 계속 한국 복수국적을 보유하게 됐다.
국적이탈 문제 관련 전문가로 선천적 복수국적 관련 독소 조항의 헌법불합치 판결을 이끌어 냈던 전종준 변호사는 “국적이탈 절차가 복잡해 한인 2세들이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은데, 특히 이번 사례처럼 이혼가정 및 한부모 가정의 경우에는 국적이탈이 아예 불가능하기도 하다”며 “지금까지 국적법의 모순을 헌법재판소가 문제 삼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한국 국적법을 제대로 개정해 남성 및 여성 모두 억울한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달에는 한국 헌법재판소가 버지니아에 거주하는 한인 2세 여성 엘리아니 이씨가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로 미국 공군 입대를 포기해야 했다며 제기했던 헌법소원에 대해 “시간이 경과했다”는 절차적 이유로 각하했다.
이씨는 현행 한국 국적법 조항 탓에 선천적 복수국적자인 자신의 미 공군 입대가 부당하게 좌절돼 헌법상 보장된 국적이탈의 자유, 양심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받았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했었다.
미 영주권자 부친과 시민권자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에서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복수국적이 됐고, 개정 국적법에 따라 국적 이탈이 어렵게 되면서 이중국적으로 미 공군 입대가 좌절됐다고 주장했다
<석인희 기자>